20180831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 (레위기 10장 1-7절)

우리는 지난 한 주 레위기 8장과 9장을 보며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시기 위해 그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성별 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물로 정결하게 온 몸을 씻었고, 거룩하게 구별된 성복을 입었으며, 관유로 부음 받고 또한 죄사함을 받기 위한 속죄 제사도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셨으면 하나님을 잘 섬기면 될 것인데,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에는 아론의 두 아들이자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하나님께 분향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에 제사장이 불을 피울 때는 반드시 제단에 있는 불을 담아다가 불을 붙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등한시 여기고 다른 불을 바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열심으로 따라야할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성막에서 봉사를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보실 때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었습니다. 특별히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는데 모범이 되어야하며, 성결하게 살아야할 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고 지키기 아니했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엄준히 심판하셨습니다. 불이 나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를 태워 버렸습니다. 얼마나 불이 거센지 오늘 2절 말씀에는 그 불이 이들을 ‘삼켰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했던 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나답과 아비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본래 나답과 아비후는 얼마나 영광스런 직책을 맡은 사람들입니까? 200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책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들을 엄준히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에 대한 공의롭게 갚으신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이 가볍게 여길 분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후에 회개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 범하는 것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그 사람이 아직 바른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지키려 하는 자야말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모에 대하여 효심이 많은 자녀일수록, 자신이 어긋난 행동을 함으로서 부모가 겪게 될 슬픔과 눈물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즐거움을 주는 행동도 삼가게 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상심케 한다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죄 짓는 것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범죄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하고 생각하며 범죄하는 것에 대하여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철저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나답과 아비후가 언제 쓰러졌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빈다. 이들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은혜가 충만한 때 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하여, 우리 안에 죄가 완전하게 정복된 것은 아닙니다. 세상 죄는 그리 간단하게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요즘 은혜가 충만해서 음란함도 교만도, 나태함도 이제 더 이상 내게는 유혹거리가 아닙니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화약에 불이 닿아도 이제 더 이상 불이 붙지 않으니 불을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하여 죄와 싸워 이길 힘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본성은 마치 화약과도 같습니다. 조그마한 죄의 불씨만 있어도 ‘꽝’하고 터져버리는 것이 우리의 죄성 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은혜가 충만하여 마음이 해이해졌을 때를 노립니다. 트로이의 목마 기억나시죠? 트로이 사람들이 언제 무너졌습니까? 적군을 앞에 두고도 자신들이 승리 했다고, 더 이상 적들은 우리에게 위험이 되지 않는다며 축배를 들며 밤새도록 자축 했을 때 그들은 무너졌습니다. 다윗도 그의 인생의 전성기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심으로 그의 영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밧세바와 성적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그의 지혜와 재산이 천하 열왕보다도 더 큰 바로 그 때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도 여전히 죄는 살아 있습니다. “이제 나는 죄로부터 안전하겠지. 이제 죄는 다 정복했어!”하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은혜가 임할 때 일수록 더욱 죄를 경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버린 채 교만하지 않고, 해이해지지 않고, 음란에 넘어지지 않도록 더욱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은혜의 때라고 방심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사단은 언제라도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우리 목을 물어 뜯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사는 것에 가장 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살아가십시오. 더욱 하나님께 충성스런 삶을 사십시오. 그 길만이 승리하는 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