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8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시편 23편 4-6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4-6절 말씀은 1절에 나타난 목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다윗의 삶에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났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먼저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자신이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라고 말한 것은, 죽음이 임박한 것 같은 시기. 모든 사람이 나를 보며 “야, 쟤는 이제 끝이다. 살아날 방법이 없다.”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때. 바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순간을 의미 합니다. 병원에 간 환자가 의사에게 시한부 판단을 통보 받을 때의 마음이겠지요. “아…이제 정말 끝이구나. 나는 이대로 져버리는구나” 하는 좌절과 절망의 순간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음침하고 절망스러운 죽음의 골짜기가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이 표현이 그에게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윗도 사람인데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이 말은 비록 그에게도 두려움과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그가 그러한 힘든 마음과 어려운 상황들을 이기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죽음이란 두려움마저 이기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고 계심을 다윗이 확실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런 다윗이 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해라는 단어는 하늘에 떠 있는 둥근 해가 아니라, 악한 피해를 의미합니다. 즉 다윗은 자신의 인생 앞에 다가오는 그 어떤 어려움들도, 곤란해 보이는 상황도, 마음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결코 종국에는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천로역정이란 책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찬의 여정 중에 궁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채 얼마 가지 못해서 몹시 비좁은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가 걷고 있는 좁은 길의 앞쪽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두 마리의 사자가 길을 막고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사자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자를 본 크리스찬 역시 깜짝 놀라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 내가 계속 이 길을 걸어가면 나도 분명히 죽겠구나?” 그는 자기 앞에는 이제 죽음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다른 이들처럼 뒤돌아 설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자, 때마침 한 사람이 그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알려줍니다. “당신은 그렇게도 용기가 없으십니까? 사자들은 사실 사슬에 매여 있으니 전혀 무서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을 시험해 보고 믿지 않는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사자들을 거기에 매어둔 것입니다. 길의 한 가운데로 오시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아주 조심스럽게 길 한가운데로 걸어가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은 정말 으르렁거릴 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 역시 우는 사자를 대면한 듯한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비록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빠져도 마치 사슬에 매인 사자들이 나를 해할 수 없던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닥쳐오는 어려움들을 은혜의 사슬로 매어 잡고 계시면 결코 그 상황도 나에게 아무런 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 주님이 내 피난처시군요! 주님이 내 목자 되시니 내가 두려워 할 필요가 전혀 없군요! (시 91:7) 천 명이 내 옆에서 죽어 엎드러지고, 만 명이 내 오른편에서 쓰러질지라도 내가 조금도 다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러니 4절에서 다윗은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든든하게 보호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하나님께서 더 좋은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상을 베푸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에게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요? 저라면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걸어서 제 자녀들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근데 우리 주님께서 그러한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이지요. 그것도 내 원수 앞에서 말이지요. 이것은 늘 다윗을 괴롭히던 그의 적군 앞에서 아주 통쾌한 복수가 됩니다. 원수보다 내가 더 잘되는 것만큼 더 통쾌한 복수가 어디 있겠어요? 그 주님이 내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도 발라주십니다.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붇는다는 것은 우리를 왕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존귀하게 여기시겠다는 의미지요. 내 잔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신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도록 오히려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그의 기쁨과 즐거움에 참예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 앞에서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야말로 통쾌한 복수입니다. 신데렐라란 어린이동화를 보면 그가 온 나라와 왕자가 찾던 바로 그 여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데렐라가 공주님이 되지요?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를 못 살게 굴던 계모와 그 양언니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지요? 이를 갈고 눈물 흘리며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에게 복수해 주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원수의 목전에서 식탁을 베풀어주시고, 기름 부어 우리 역시 왕족으로 삼아주시고, 우리의 잔즉 우리의 마음이 가득 넘치도록 분에 찬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그 역전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믿는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 6절입니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6절은요 시편 23절의 결말입니다. 이 좋은 하나님 그분의 선하신 계획과 인자하신 도움의 손길이 우리 삶에 계속 되어집니다. 언제까지요? 평생이지요. 우리가 차를 사면요 5년 보장 10년 보장 이런 guarantee 가 붙죠? 그런데 다윗은 오늘 뭐라고 하고 있어요?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무슨 보장이에요? “Lifetime guarantee” 평생보장이라는 거에요.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주시는 주님, 나를 왕족과 같이 여겨주시고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잔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런 하나님과 평생 함께하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 선하신 주님과 매일매일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집. 우리가 이 새벽에 나아온 교회입니다. 오늘 이 새벽, 죽음도 두렵지 않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잔을 넘치게 하시는 복 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