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6 목자 되시는 하나님 (시편 23편 1-3절)

오늘도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채워지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시편 23편 1-3절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인 다윗은 아무도 자기를 몰라주던 작고 여린 소년시절,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양을 치던 목동 시절을 떠올리며 이 시를 적었습니다. 이 유명한 시가 어떻게 시작합니까? 우리 함께 1절 말씀만 다시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실 시편 23편은 이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도 우리 삶에 참 만족이 있을 수 있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실로 양이란 동물에게 있어서 목자는 그의 전부이며, 양의 참 행복은 성실하고 지혜로운 목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부모를 잘 만나고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이 복이라면, 양에게 있어서는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만큼 커다란 복이 없지요. 어디에 맛있고 먹기 좋은 풀이 있는 지 알고 있는 목자를 만나면 배부른 삶을 살게 되고, 또 바람 좋고 물 좋은 시냇가를 아는 목자를 만나면 편안한 쉼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용기 있고 사랑 많은 목자를 만나면, 사나운 짐승들이 양들을 노릴 때도 목자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거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쁜 목자를 만나게 되면 양의 삶은 불안과 배고픔 추위에 떨며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고백한 다윗의 시에 응답이라도 하듯,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1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I am the good shepherd 라고 “내가 바로 그 좋은 목자야.” 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신 것이지요.

좋은 목자는 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배가 고픈지, 언제 목이 마른 지, 또 언제 자고 싶어하는 지, 무엇을 무서워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양의 필요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좋은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의 피곤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우리를 쉬게 해주십니다. 우리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런데요 그냥 아무데서나 쉬는 것이 아니라, 푸른 풀밭, 잔잔한 물 소리가 들리는 물가로 우리들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떠나 여행을 가면 잠 잘 곳을 찾지요? 양들도 그리했습니다. 집을 떠나 먼 길에서 풀을 먹다 보면 잠시 쉴 곳이 필요합니다. 그런 양들의 쉴 곳을 바로 목자가 찾아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여행을 갈 때와 비슷합니다. 부모와 여행을 가는 어린 자녀들은 오늘 내가 어디에서 잘 지 모릅니다. 호텔 로비에 들어가야 “아 내가 오늘 자는 곳이 여기구나.”하고 아는 것이지요. 목자는 여린 양들이 잘 쉴 수 있도록 먹을 것이 넉넉히 있고, 마실 물도 가까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바로 우리의 쉴 곳을 마련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육신의 필요도 채워주십니다. 로뎀나무 아래 지쳐 있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님은 그의 천사를 통해서 떡과 마실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서 그에게 “엘리야야, 일어나 먹어야지. 아직 갈 길이 있잖니… 일어나 먹어야지..” 하고 그에게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밤새 고기잡지 못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오셔서 숯불에 구운 맛있는 고기들과 떡을 주십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새벽녘에 불을 피우고 숯불장작에 고기를 구우시고 제자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주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낯선 풍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필요만을 채워주신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잘 아시기에, 우리를 먹이시고, 마시우게 하시고 또 쉴만한 곳에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피곤한 우리 몸은 주님이 주시는 쉼을 통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과 우리의 다른 점은 우리 주께서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지친 마음과 힘없는 영혼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이에요.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표현은 내게 새 힘을 주신다는 것이에요. 마음이 낙심되고, 좌절을 겪고 있거나, 더 이상 하나님께 나아갈 힘이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에게 일어날 새 힘을 주고 계신 것이지요. 그 주님이 오늘도 나를 주님의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해가고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새벽미명에 이 시간에 나와온 것도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단잠에서 깨워주시고, 교회까지 안전하게 보내주셔서 가능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이것이 우리가 잘나고 무언가 자격이 있어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3절 후반절에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표현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축구선수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를 종종 TV를 통해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는 축구를 전혀 잘 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들로 인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보는 경기에서도 명예를 누립니다. 자녀가 잘하면 부모에게 명예가 돌아가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복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계에 높아집니다.

우리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이 새벽에도 우리의 육신의 쉼을 주시며, 영적인 힘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지금도 인도해 가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좋은 목자 되셨던 주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이 새벽에도 우리 모든 코너스톤 성도님들의 삶에 좋으신 목자가 되어주셔서,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영적인 공급함을 허락하시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