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8 감사의 능력 (시편 69편 29-31절)

다윗은 참 흥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왕이란 자리에 올라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는 많은 시간 그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로부터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머리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원수들이 몰려와도 다윗 한 사람의 목숨만큼은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한 결 같이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로부터 다윗을 지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결과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극심한 고통과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한결같이 신실한 태도를 유지했던 다윗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 복을 받았던 그의 믿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다윗이 가진 믿음의 강점이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하나님께 가감없이 고백합니다. “(시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다윗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외적으로는 가난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경제적인 결핍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삶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무능과 그로 인한 비통함을 상징합니다. 내적으로는 슬픕니다. 이 슬픔은 몹시도 마음이 괴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육신적,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철저하게 낮아진 상태이며 자신을 죽이려고 밀물처럼 다가오는 원수들로 인하여 심히 고통스런 상태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69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라는 말은 원수로들로부터 더 이상 짓밟힘을 당하지 않도록 그런 비천한 지경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O God, protect me.”

자, 다윗의 기도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지금 말 그대로 죽을 만큼 마음이 어렵습니다.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만큼 죽음에 가까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고통과 위기 상황 속에서도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처럼 죽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만이 자신을 이 깊은 수렁에서 구원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 당장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실 것을 신뢰하며, 미리 믿음으로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쉐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다. 힘들 때 참는 건 이류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신앙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 가 생각이 듭니다. 힘들 때 절망하고 좌절하는 자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야말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에 놀라운 의미와 능력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30-3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시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구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는 하나님께 수소 한 마리를 잡아 드리는 번제야 말로 최고의 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값비싼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수소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수소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여호와의 마음을 더욱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발견한 놀라운 진리였습니다. 사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소고기를 좋아하시겠습니까? 마블링이 좋고 육즙이 많은 부위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소의 등급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의 참 된 의미는 드리는 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제사 때 드리는 예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와 같은 의미로 뿔이 달렸고 굽이 좋은 값비싼 황소 한 마리를 바치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부르고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흐뭇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제사의 의식적인 면을 무가치하게 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는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아니한 의식적 제사보다는, 차라리 의식이 없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진 진정한 마음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 것은 이 번 한 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삶에 찾아온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자주 이러한 감사의 찬양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환난 당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두 사람이 똑 같은 길을 가다 넘어졌습니다. 한 사람은 험하고 거친 말을 내뱉으며 하나님을 욕하며 일어납니다. “아이, 재수 없어. 하나님 이게 뭐에요?”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무릎의 흙먼지를 털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크게 안 다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다행히 상처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란 결국 ‘인생을 해석하는 자세’ 입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절망과 좌절로 빠져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윗처럼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위기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처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흠 없는 소 한 마리를 잡아다 드릴 형편은 되지 않아도,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의식적 제사보다 더 큰 기쁨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합니다. 다윗은 환난을 당할 때마다 자주 하나님께 이런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감사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게 됩니다. 오늘 이 하루 이 놀라운 감사의 능력을 기억하시고, 각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제사를 드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