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4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야고보서 4 4-10)

결혼을 한 사람이 그의 배우자를 두고 다른 남자 혹은 여자와 부정적인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가리켜 ‘간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러 차례 ‘간음한 자들’이라고 질책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채 이방신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4절에 나오는 “간음하는 여자들” 역시 문자 그대로 간음한 여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적 간음’이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두 남편을 가질 수 없듯이,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습니다. 세상과 친구가 된 사람들은 반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비록 하나님의 신부가 된 우리들이 세상과 벗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지 모르지만, 신랑 되신 하나님은 자신의 아내 된 성도들을 사랑하시되 5절 말씀을 보니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랑 놀아나는데, “그래, 너 그렇게 살아라.”하고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그건 사랑이 아니죠.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를 다시 데리고 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가 이대로 세상을 사랑하도록 내버려두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 삶에 고통을 허락하셔서라도 다시 우리들을 주님의 품으로 데리고 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죄 짓고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치실 때가 있으십니다. 질병을 주시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게도 하십니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못살게 굴게 만들기도 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가 다시 하나님을 찾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로 그 심령을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어느 신학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 ‘천국의 사냥개’라고 표현 했습니다. 사냥개는 먹이감을 발견하면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서 물고 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이런 사냥개 같아서, 주님을 피해 멀리 도망친 우리들을 찾아내시고 또 다시 우리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간음한 여인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그 안에 죄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 보다 강력합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세상과 벗이 되었던 자들이 용서받고 다시 주님께 돌아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로 인해 얼룩진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십니다. 이 은혜가 바로 6절에 나오는 “더욱 큰 은혜”입니다. 6절 말슴을 보겠습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의 본성을 능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영적 간음을 지은 자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하며, 고집을 피우며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멸망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겸손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말씀으로 순종하는 자들은 죄사함과 회복이라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7절에 야고보는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권면을 했습니다. 여기서 순복이란 자신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위에 있는 것은 순복이 아닙니다. 나를 하나님 아래에 두고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순복’입니다. 이와 동시에 행해져야 하는 것이 바로 ‘마귀를 대적하라’ 입니다. ‘순복’과 ‘대적’은 둘 다 적극적인 태도 입니다.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세상에 한 발 들이고, 교회에 한 발 들이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는 순복”, “마귀는 대적” 이렇게 확실한 태도로 신앙생활 할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 했습니다.

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만약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고 느낀다면,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8절에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은 죄를 짓던 행동들을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벗하고 살아가므로 멀어진 현재의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마음을 정리해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두 가지 마음을 정리하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오가며 했던 영적 간음을 그치고 하나님만 가까이 해야 합니다.

9절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가져야 할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 3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죄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고통과 문제를 일으키는 지 알고 죄를 짓는 우리 자신의 비참함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망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원통하고 분한 감정을 가지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회개하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여태까지 웃음을 가져다 주던 죄악들을 끊어버리고 애통하고, 예전에 즐거워 하던 죄들도 다 끊어야 합니다. 죄가 우리의 삶을 파괴시켜 버리기에, 슬피 울며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세상과 벗 되어 살아가던 지난날을 뉘우치며,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의 영혼을 받아 주십니다. 그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의 영혼을 치유하시고, 그의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다시금 가능케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