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2 말씀을 실천하라 (야고보서 1 19-27)

상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계속해서 상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삶 속에서 적용될 때에야 비로서 그 가치를 발휘하고 유익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며, 고통과 저주가 삶에 임한다는 진리를 머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 되고 실천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고 권면 했습니다. 여기서 ‘내어 버리라’는 말은 ‘옷을 벗어 버리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면 여기에 어찌 깨끗한 새 옷을 입겠습니까? 먼저 더러운 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더러운 떼에 물든 옷을 벗어버리듯이, 삶의 모든 죄악을 내어 버려야 합니다.

이어서 야고보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말씀에 완고하게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감 있게 응답하고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야고보는 다른 사도들보다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 했습니다. 그는 22절에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한 사람이며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설교 말씀을 많이 들어도, 듣는 데서 끝나는 사람은 늘 신앙의 수준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10년, 20년 넘게 교회를 다녀도 설교를 듣기만 하기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전 받은 말씀대로 새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며 그의 영혼이 성장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의 모든 책임을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말씀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비취어 보고 있는 사람으로 비유했습니다. 이 당시 거울은 오늘날처럼 유리 거울이 아니라, 구리로 만들어진 거울입니다. 따라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공들여 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했습니다. 거울을 자세히 들여보아, 내 이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코털은 삐져 나았고, 얼굴에는 버짐이 폈고, 머리에는 이물질이 묻어 있고, 눈가에는 눈곱이 끼여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자세히 보는 것으로 끝내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제거하고, 삐져나온 코털을 자르고, 눈곱을 닦아내는 일들을 하는데 까지 가야 깨끗해 집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죄악을 깨닫게 하실 때, 깨닫는 데에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 죄를 끊어버리고 회개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론적인 지식만 가지고서는 그 누구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듣고 행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거울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람은 곧 거울 속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잊게 되듯이, 말씀만 듣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사람은, 결국 또 다시 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2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을 행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운데는 행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경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교회도 잘 나오고, 십일조도 하고, 구제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하나님이 도전하시는 부분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행함도 없습니다. 그런 자의 경건은 헛 것입니다. 말씀을 버리고 하는 신앙생활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26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여기 스스로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집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헌신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은 자신이 나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입이 매우 거칩니다. 욕도 잘 하고, 다른 사람 험담도 수시로 합니다. 툭하면 거짓말하고, 자기 자랑하기 바쁩니다. 하나님께서 말하는 것 주의하고, 언어 생활 고치라는 말씀의 메시지를 교회 목사님을 통해 이 분께 많이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본래 성질이 이런데 어떻게 하겠어? 사람이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하고 자신의 언어생활을 고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 집사님이 교회에서 열심으로 섬긴다고 해도 안타깝게도 그 분의 신앙은 하나님 보실 때 헛 것입니다. 그 열심도 아무런 유익함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진짜 경건한 사람은 외적인 생활에서 그의 경건이 나타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 같이 고통 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줌으로서 필요를 채워 주는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또한 세상에 살면서도 스스로 죄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주님 보실 때 참으로 경건한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과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입니까?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길 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복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주어진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받은 말씀을 삶 속에서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남은 우리의 인생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또한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행하는 담대함과 지혜를 주님께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