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2 위의 것을 추구하라 (골로새서 3 1-4)

축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축구 경기를 챙겨 봅니다. 누가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 축구 선수들의 정보에 대하여 찾아보고 그 정보들을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늘 ‘어떻게 하면 요리를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서점에 가도 새로운 조리법을 알리는 책을 찾고, 마켓에 가도 새로운 조미료가 없나 찾아봅니다. 이처럼 사람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요리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주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 종일 TV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의 것’ 입니다. 3장 2절을 보겠습니다.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 ‘위의 것’이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를 가리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로 세워갈 것인가?”하는 자세를 가지고, 주된 관심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즉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영혼을 전도하는 것, 믿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위의 것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는 것 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반대로 땅에 있는 것이란 ‘세속적인 것들 입니다. 이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고 썩어질 것들 입니다. 육신의 일, 세상 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건강, 재물, 명예, 권세, 탐욕 이 모든 것이 땅의 일입니다. 땅의 것을 찾지 말라는 말씀은 이런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것을 주된 삶의 관심사 혹은 인생의 목표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땅의 것은 탐하게 될 때 그의 영혼은 더럽혀 지며, 삶은 불경건하게 변하고 부도덕한 삶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땅의 것을 추구하거나 삶의 주된 목표로 삼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의 마음을 세상 염려에 빼앗기지 말고, 우선순위를 하나님 나라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고 사는 문제가 안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 때 의식주만큼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하나님 나라를 중요하게 여기며 삶의 우선순위를 거기에 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우선순위 역시 먹고 사는 문제나 세속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들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위에 것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위의 것은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생각하고, 그 분을 마음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때 우리는 위의 것을 찾고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실존적인 하나의 딜레마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이처럼 바쁘게 일터에서 일하고 살아가는데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까? 또한 먹고 사는 문제 하만 해도 해결하기 급급한데 어떻게 언제 예수님을 떠올리고 묵상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명령은 고요한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사는 성직자들이나 가능한 삶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평화롭고 종교적인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위의 것은 무가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면, 우리 역시 위의 것을 버리고, 땅의 것, 육신의 필요와 만족만 바라보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위의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을 보니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 이미 죽어버린 망자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울은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는 지금 우리의 옛 사람이 죽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이 전부인지 알고 그것만을 좇아 살았던 옛 사람, 죄악 행하기를 즐기며,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탐욕을 강하게 갈망하던 옛 사람이 죽었다는 선포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죽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重生)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그의 주된 관심을 땅의 것들에게 두지 말고 하늘의 것들에 두어야 합니다. 중생을 통해 옛 사람은 죽었으므로 이전처럼 땅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주된 관심을 땅의 것이 아니라, 즉 천국 소망, 구원의 역사, 순종의 삶 같은 위의 것들을 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