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깨끗한 것을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어 외출하기 위해서 옷을 입어도 김치 국물 묻고 땀 냄새 나는 옷보다는, 깨끗하게 빨래 되어서 뽀송뽀송 하고 좋은 향기 나는 옷을 입고 싶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그릇을 고르면, 음식 찌꺼기가 묻어 있는 그릇 보다는 깨끗하게 설거지 되어 있는 그릇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인 우리들도 깨끗한 것을 사용하기를 원하듯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도 주님의 사람들을 택하실 때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영적 순결함을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어찌나 우상을 열심히 모시고 살았던지 우상을 관리하는 사람도 따로 세워 두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가 바로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우상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 집에는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 있었고, 아세라 신의 우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의 아버지의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모든 집안 식구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상을 맡아 관리하는 책임자 입니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기드온이 직접 제단을 헐고 우상을 부셔야만 합니다. 우상을 불태운 일이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 된다면, 분명 그의 가정을 위험해 처하게 될 것이고, 그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이 일을 주도한 기드온 자신 역시 큰 해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별히 바알은 비를 내리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농경사회인 그 당시 바알 신의 제단을 헐어버린 소식이 들려지게 된다면 동네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과 수확이 줄어드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크게 화를 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불교 국가 중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모시고 있는 신의 신상을 누군가 넘어뜨리거나 훼손하면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매질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심지어 우상을 훼손한 사람을 죽이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사사기 시대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따라서 만약 기드온이 우상을 건들면 기드온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매질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기드온은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요?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두려웠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니 기드온이 그 성읍 사람들이 두려워서 환한 낮에는 하지 못하고 밤이 되자 종 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바알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나무로 된 아세라 우상을 찍어 얻은 나무는 제단에 불을 피우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기드온의 집에 찾아온 마을 사람들은 바알의 제단이 훼파되고 아세라 상이 찍혀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분을 내며 누가 이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혈안이 되어 찾기 시작했고, 결국 기드온의 소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삿 6: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오늘 이 장면이 클라이막스 입니다. 마을 주민이 섬기는 우상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 그는 과연 자신의 아들 기드온을 죽이려고 온 마을 사람들과 동조 하였을까요? 놀랍게도 우상을 책임지는 일이 직업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꾸짖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위해 변호를 하였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자기 아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둘러 쌓인 채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바알의 편을 들어 싸우겠다는 것이오? 당신들이 바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오? 누구든지 그의 편을 들어 싸우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자기의 제단을 헌 사람과 직접 싸우도록 놓아 두시오.” 요아스는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그의 제단을 헐어버린 자신의 아들 기드온이 벌을 받고 죽을 것이니 그를 가만히 놔 두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드온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성령께서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아들이 교회 못 가게 막고, 핍박하던 아버지가 이제는 아들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한 셈입니다.
그 날 사람들은 기드온을 향하여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는 ‘바알에게 대항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에는 기드온이 바알을 쳐부수었으나, 바알은 기드온에게 어떠한 재앙도 처벌도 내리지 못한 사실에 대한 조롱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기드온은 바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 내므로 그 신들이 가짜이고 헛된 우상 임을 밝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들어 쓰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먼저 그의 가정을 영적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순결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드온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 “여룹바알”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가져야 할 자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우상을 찍어버린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이 세상의 죄악과 거짓된 신들을 대항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기드온이 적들과 싸우기 전 먼저 영적 순결을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내부의 영적 순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외부의 적 미디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는 영적인 원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그 권세를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영적 순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명을 맡기기 전 반드시 영적으로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죄악은 없습니까? 끊어내야 하는 악한 습관들과 죄악 된 생활의 모습은 없습니까? 기드온처럼 과감하게 죄를 찍어버리고, 세상의 유혹을 헐어버리는 영적 순결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의 우상을 찍어 불사르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온전히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더 큰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