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으로 나뉘어진 홍해를 건너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이야기, 뜨거운 풀무불에 불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 바다 위를 걸어가신 예수님 이야기, 죽음을 보지 않고 불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간 엘리야 이야기 등등 이처럼 성경 곳곳에는 놀라운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적들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일회적이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 희귀한 사건들 입니다. 그러다 보니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 속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허구다.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의심은 세상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도 의심이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기드온이 그러 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밭에 씨를 뿌리면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갑니다. 적군은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고 살지 못하도록 괴롭혔습니다. 메뚜기 때처럼 많은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소와 양, 나귀와 같은 가축들을 남김 없이 빼앗아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굶주림에 지치고, 미디안의 폭행과 압제에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전쟁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 였습니다. 고통과 굶주림 속에서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돌이키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택하신 사람은 바로 ‘기드온’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참 흥미롭습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하나님은 천사를 기드온에게 보내셔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언을 받은 천사가 기드온이 살고 있는 동네에 찾아왔습니다. 그 때 기드온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밀을 타작하려면 곳간에서 할 것인데 그는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 말한대로 미디안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식량을 다 악탈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기 위해 포도즙을 짜는 큰 통 속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적으로부터 구원할 위대한 사사를 찾으셨는데, 그 후보자인 기드온이 지금 적군이 두려워서 몰래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 아이러니컬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처럼 연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큰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한 평생 특출 난 것이 살아온 평범한 노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신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연약한 자들, 낮은 자들을 통하여 크신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참 평범하다”, “나는 연약하고 남들보다 특별 나게 잘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오히려 그런 자들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능력이 좋고 지혜로운 자는 않 쓰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세도, 다니엘도, 바울 같이 탁월한 사람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힘 좋고 싸움 잘한다고 뽐내는 교만한 사람들은 싫어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힘과 능력을 보고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한 가지를 보십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단 한 가지 이유, 그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보시니, 그가 가진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기드온도 그런 사람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니 그는 뭐 그렇게 대단한 집안 출신의 사람도 아니고, 어딘가가 특출 난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적군이 두려워서 벌벌 떨며 포도주 틀에서 숨어 밀을 타작하고 있는 이 무능하고 나약한 사람 기드온,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안에 있는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강한 갈망이 있었으며,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 드디어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났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천사가 기드온을 뭐라고 부릅니까? “큰 용사여!” 지금 기드온이 무엇하고 있습니까? 칼을 들고 용감하게 적과 싸우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저들 몰래 포도주 통에 들어가서 혼자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그에게 와서 “큰 용사여!”하고 불렀습니다. 기드온이 무슨 무협영화에서 나오는 은둔 고수여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처럼 뛰어난 지략가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에게 주의 능력을 주심으로 그가 큰 용사가 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린 소년 다윗도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큰 용사가 될 수 있었듯이,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오늘 직장이나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천사가 찾아온다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드온은 달랐습니다. 기드온은 눈 앞에 펼쳐진 민족의 비극을 보며 긴 시간 동안 그의 가슴 속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너무 깊게 그의 마음에 새겨진 나머지 난생 처음 보는 천사에게 그는 자신이 늘 깊게 시름해 온 그 질문을 던졌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기드온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Mr. Angel.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계시면 왜 우리가 이런 괴로움과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면 왜 출애굽한 우리 조상들에게 보여주셨던 그 놀라운 이적이 우리의 시대에는 안 일어납니까?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적군에게 고통 당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이처럼 초라하게 포도주 통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은 것 아니냐고 따지듯이 말하고 있는 거죠.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들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드온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는 “그래 하나님이 이렇게 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놀랍게 역사하셨구나.”하고 이해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문제 앞에 봉착하게 되면 하나님이 없으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성경 속 인물들과 내가 같나?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다 이전 이야기들일 뿐이야.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지 않으셔.” 이런 식으로 믿음이 전혀 없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고, 주님의 도우심에 대하여 회의적인 기드온을 향해 주님은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삿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용사라도 자기 힘을 의지하면 실패하고, 지혜자라도 자기 지식을 의지하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고 연약한 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인간적인 차원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6절 그에게 가장 필요한 약속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삿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기드온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야. 내가 너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풀 것이야! 저 메뚜기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보이는 미디안 사람일지라도, 너가 한 사람 쓰러트리듯이, 너가 이길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길 것과 전쟁의 승리를 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이야기하며 “주님 제가 무엇으로 이 전쟁을 이기겠습니까?”하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주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 믿을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자신의 연약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중 어디에 더 집중합니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