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2 부르심 앞에서 내 생각 내려놓기 (사사기 4 1-10)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땅에 평화가 옵니다. 사사가 죽은 후 또 다시 죄를 짓습니다. 이러한 “죄 –심판 구원” 패턴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스라엘의 두번째 사사인 왼손잡이 에훗이 죽음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죄를 지으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큰 고통을 불러왔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로 만든 전차 900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아직 철기 문화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높은 철검을 들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면 이스라엘 병사들의 검은 엿가락처럼 휘어 버렸습니다. 칼 하나만 해도 상대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철로 만든 전차 900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치 오늘날의 탱크 900대를 가진 듯한 인상을 주는 강력한 전력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왕 야빈의 심한 학대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영적인 권위를 지닌 사사들이 살아있을 때는 하나님을 찾고 신앙을 지켰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지도자가 없어지자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나안 왕 야빈을 통해 이스라엘을 크게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해서 고통 당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 당했다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고 숨통이 트이면 또 다시 옛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죄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지고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는 것을 작게 여기지 말고, 늘 주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이고 하솔을 다스리는 야빈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하게 하셨습니다. 야빈은 많은 이스라앨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는 그들이 가진 것을 약탈하고,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노예로 삼아 중노동을 감당하게 했으며, 때마다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야빈에게 때마다 바쳐야 하는 조공이 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굶주리고 피폐해져 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큰 고통이 자기들에게 왔음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잘못된 생활을 돌이키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기가 보여주는 놀라운 사실은,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두 번 용서해주면 많이 참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수도 한 두 번이지 여러 차례 저지르는 사람은 잘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인자는 영원 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주님을 찾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선지자 드보라는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녀는 바락을 불러놓고, 그에게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싸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4: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삿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야빈 왕의 군사들은 모두 철검을 사용하고, 그들에게 강력한 철병거 900 대가 있지만, 드보라는 바락이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드보라는 사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믿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드보라와 달랐습니다. 바락은 하나니 보다 눈 앞에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통해 바락이 어디서 군사들을 모집할지 알려주셨고, 또한 큰 승리까지도 약속해 주셨지만 바락은 적에 대한 두려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락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바락은 하나님의 사람 드보라가 자신과 동행하여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바락에게 군사를 이끌만한 리더십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사람인 드보라는 의지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락이 주님이 아닌 사람을 의지하자, 결국 그가 받았었을 영광이 다른 여인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군대장관 시스라는 바락의 손에 죽지 못하고, 여인의 손을 통해 죽게 됩니다. 바락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의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매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판단을 앞세워 영광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가진 인간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여 주님 주시는 귀한 영광과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