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6 완수하지 못한 사명 (사사기 1 11-21)

시므온 지파와 연합한 유다 지파는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70명의 왕을 상대로 무패를 자랑하는 적군 아도니 베섹을 이기고, 헤브론에 살고 있는 거인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그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유다지파 출신 갈렙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빠르게 가나안 정복을 해 가던 갈렙은 누구든지 기럇 세벨이란 성을 정복하면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이에 갈렙의 조카인 옷니엘이 용감하게 성을 정복하여 악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갈렙의 사위가 된 ‘옷니엘’이란 인물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여호수아 이후 첫 ‘사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파는 갈렙과 옷니엘과 같은 용맹한 리더들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을 빠르게 정복해 갔습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여기보니 유다 지파가 산지 거민들과 싸울 때는 이들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 거민들을 쫒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골짜기 거민들과 싸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눈 앞에 철 병거를 두려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히타이트 민족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가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이 땅에는 일찍부터 막강한 무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철기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다스리던 왕정시대에도 철로 된 농기구나 무기를 다루려면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사사시대에 사용한 무기들은 철병기 앞에 엿가락 꺾이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19절을 보면 유다지파가 골짜기 거민들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가 상대방은 철병거로 최신 무기를 사용하고, 유다 지파는 그러하지 못한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사실 훗날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9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상대로도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즉 이 전쟁의 진짜 패배 원인은 유다 지파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칼과 창에 있지 않습니다. 누가 얼마나 더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가?’ 중요한 것입니다. 골리앗은 큰 칼과 베틀 채 같은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어린 목동 다윗은 손에 막대기 하나 들고 물 맷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했습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전쟁의 승리가 칼과 창과 같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유다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 거민들과 싸웠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다면, 그들은 충분히 이 거민들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철병거를 가진 적이란 사실에 미리 겁을 먹고 하나님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분배 받은 땅을 열심으로 정복해 가던 유다 지파였지만,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 거민들은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하나도 남김없이 무찌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지파는 철병거에 겁을 먹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 정복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19절을 다시 보면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이것이 ‘내 능력이 안 되어서’, ‘상대방이 너무 강력해서 못 쫓아냈다’는 식의 해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이것은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유다 지파는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철병거와 싸울 용기와 믿음이 없어서 고의적으로 그들과의 싸움을 회피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다 지파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여기 말씀을 보면, 베냐민 자손들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자들입니다. 지형상 정복하기 매우 까다로운 곳입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도 이들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이곳 주민들의 땅은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회피하는 직무유기였습니다. 이 때 정복하지 못한 여부스 족속은 계속 이스라엘 땅에서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이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훗날 다윗이 왕이 되어서 비로소 이 땅을 완전하게 정복하게 됩니다.

비록 유다 지파는 초반에 열심으로 땅을 정복했지만,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철병기를 가지고 있는 골짜기 거민들은 남겨 두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도 공격하기 어려운 산악지대에 사는 여부스 거민들은 남겨 두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전쟁에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데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혹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90% 순종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99%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마음을 쏟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동일하게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자기 만족의 수준에서 사명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온전히 완성하는 오늘 이 하루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