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5 위험도 마다 않는 열정의 사람 (사도행전 14 1-7)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이란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재 터키에 속한 ‘코냐’라는 도시 입니다. 당시 이고니온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실 대단한 역사입니다. 오늘날 길을 가는 한 사람 아무나 붙잡고 전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지금 기독교에 적대적인 유대교의 중심지인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심지어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에는 성령의 강한 역사가 함께 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있던가 하면, 복음을 듣고 오히려 적대심이 더 증폭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에 대하여 악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고니온에 살고 있는 다른 헬라 사람들까지 동원하여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악한 감정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갖은 악행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못살게 굴었습니다. 이러한 사단의 역사는 오늘날 선교지에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면 어디서나 선교사님을 핍박하고 못 살게 구는 세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교사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오물을 투척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중동에서는 사람들이 복면을 쓰고 나타나 선교사님 가족들을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나가라고 칼을 들고 협박도 합니다. 사단은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복음 전하는 자들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는 유대인들의 강한 반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이고니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오랫동안 이 도시에 머물러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새롭게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3절 말씀을 보니 두 사람이 “주를 힘입어” 사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핍박이 거세질수록 바울과 바나바는 더욱 더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병이 낫고 귀신이 쫓아 나가는 일들이 벌어지니 얼마나 복음 전도가 강력했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말미암아 이고니온에 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급기야 성내에는 유대인을 따르는 자들과 두 사도를 따르는 자들로 나뉘어 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여 이들을 적대시하고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두 사도를 핍박한 또 다른 자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 도시를 통치하는 관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박해는 유대인들의 시기와 질투로 끝나지 않고, 정치 지도자들까지 가담 된 조직적인 박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니,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그리고 관원들까지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능욕했습니다. 즉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수치심을 느끼도록 무례하고 모욕적인 말들을 뱉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조롱하고 경멸하는 말로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돌로 두 사도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돌로 사람을 쳐죽이는 처형법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사형 집행 방법으로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성경에 다 기록되지 않았습니다만, 당대에 수 많은 전도자들이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피 흘리며 순교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도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한 것 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이고니온 사람들의 조롱과 원수들이 돌을 들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험악한 분위기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두 사도는 박해자들과의 무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또 다시 도시를 옮겨 갔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약 38km 정도 떨어진 ‘루스드라’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새로운 도시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이 도시에서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시 동남쪽으로 30km 떨어진 더베라는 도시에 가서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7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4: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이 구절이 한국 말로 번역되면서 빠진 리앙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끊임없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도시를 옮겨가며 계속해서, 끊임없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지금 자기들을 조롱하고 돌을 들고 죽이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적해 오고 있는 것을 알고도, 이 두 사도는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역지를 옮겨가며 계속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심 전력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열정의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사명을 잘 감당하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열정의 복음 전도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