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5 복음과 삶의 변화 (사도행전 9장 19-30절)

유년시절부터 평생토록 유대교를 위해 헌신해 온 사울은 다메섹에 오는 길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3일 동안 밤낮으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도대체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적인 갈등과 고뇌에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사렛 예수를 이단이라고 앞장 서서 핍박해 온 그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눈 부신 빛을 통해 자신을 찾아오신 분은 분명 예수님 이셨습니다.

3일 금식이 끝난 후 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아기 새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온 것처럼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영적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시다.”라는 이 말씀이 그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직접 찾아오신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로 다메섹에 있는 회당들을 돌아다니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대제사장에게 공문까지 받아온 사울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던 사람이 아닌가? 또 그가 여기 온 것도 그들을 잡아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려던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울은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더욱 힘 있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 자,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울에 대한 악한 감정을 죽이고자 음모를 꾸몄습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사울이야말로 가장 큰 배신자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에서 도망친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제자들과 교제하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만큼 열심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바로 그러할 때 초대교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인 바나바가 직접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습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찾아왔으며, 또한 그가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사연까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비록 과거에 제자들을 잡던 원수였던 사울 이지만, 제자들은 이제 그를 주 안에서 믿음의 한 형제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그리한 것처럼 예루살렘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전파했습니다. 이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던 원수가, 이제는 예수를 널리 전하는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진실로 그의 이런 변화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조차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삶의 변화에 대하여, 사울은 간단하게 예수를 만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를 만난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머리로 혹은 교리적으로 그에 대해서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 뿐 아니라 그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삶 전체가 변화 되었습니다.

똑같은 화분에 두 씨앗을 심어 두었습니다. 다만, 한 화분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음지에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두 화분을 비교해보니, 햇빛을 많이 받은 화분 안에 있는 식물이 더 많은 꽃을 맺었습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나비와 벌이 날아와 앉아 쉬어가는 향기 나는 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지에 놓아둔 화분 속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식물은 햇빛을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의 차이가 선명하게 들어 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쩌면 사울처럼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 할지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삶에 눈에 뛰는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오히려 죄악의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은혜가 들어오지 않는 영적 음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겉에서 눈으로만 보면, 이 나무가 선한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정체를 금방 알게 됩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선한 나무요,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나쁜 열매를 맺는 열매는 그 나무도 나쁜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삶을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크게 달라진 삶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한 열매입니까? 햇빛과 같이 강한 주님과의 교제는 우리 삶으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그의 삶에서 성숙한 성품의 열매,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울은 예수를 만나 그의 삶이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한 사람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변화하는 사건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생의 주인 되심을 진실 되이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정한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을 통한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께 믿음으로 반응하여 진정한 삶의 변화를 오늘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