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6 죄에서 떠나라 (사도행전 3장 18-26절)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혹은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만이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습니다. 건강할 때는 의사를 만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몸이 많이 아프기 시작하면 의사만큼 급하게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의사와 내가 관계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내 몸에 이상이 있는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환자는 의사가 내 질병을 진단하고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환자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영혼의 주치의 되십니다. 자기 영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님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영혼에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는 사람은 예수님 없이 살아도 아무런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스스로 그가 가진 영혼의 죄를 감당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은 암환자처럼 벌벌 떨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심각한 암 덩어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영혼의 주치의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끊어내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죄,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해도 여전히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가진 자신을 돌아보며, 이대로라면 죽어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렇게 죄로 인해 자신의 삶이 큰 고통을 받고 있고, 또 나중에는 더 큰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수님 앞에 나아갑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의사 선생님의 손을 꼭 붙잡고 “의사 선생님, 돈은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하고 간곡하게 부탁하지 않습니까? 자신 안에 영혼의 암 덩어리인 죄를 발견한 사람도 예수님 앞에 이와 같이 매달리게 됩니다. “예수님, 제가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이 죄는 씻어지지 않습니다. 이 죄가 있으면 저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안에 있는 죄를 씻어주십시오!”하고 예수님께 눈물로 죄 사함을 간구할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 사장님이요,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요. 새로 분점을 열었습니다. 요즘 말로 대박이 터졌어요.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막 이런저런 상상을 해봅니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집을 더 큰 걸 살까? 땅을 살까? 건물을 하나 지을까?”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합니다. 마침 다음날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병원에 갔더니, 글세 의사선생님이 간암 말기라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길어도 한 달 정도 살면 많이 사는 거래요.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자기 아내 입니다. “여보, 나 복권 당첨 되었어.” 아니, 지금 당장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것들이 이뤄진다 한들 죽으면 끝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눅12:20) 어리석은 자여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이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 네 영혼을 네게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너를 위해 장만한 것들을 다 누가 갖게 되겠느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 하고 있습니까? 은과 금과 같은 재물을 더욱 쌓기 위해, 헛된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위해 예수님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런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의 영혼의 질병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으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천하를 얻고도 영혼을 잃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만족보다 우리의 영적인 질병을 해결하는데 초점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앞선 문맥을 보면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나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 기적 자체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들도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필요에 더 민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들의 헛된 관심을 돌이켜 본질적인 문제로 이끌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육체적인 육신의 불구자가 완전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치시는 은혜야 말로 몸을 성케 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영적인 불구자, 영적인 사망의 상태인 우리의 영혼을 일으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사실을 이들에게 말해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전해준 설교의 핵심 주제는 1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1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시작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고 돌이켜 우리의 죄를 없이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주치의이신 예수님과 내가 관계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내 안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가 가득하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와 상관이 있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사도 베드로의 설교의 결말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죄와 악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고, 우리 안에 있는 악함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신앙생활의 시작은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가 전해준 이 복음의 핵심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 떠나지 못한 악이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한 이 놀라운 복음의 초청에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죄악에서 떠나 새롭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복음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죄를 회개하므로 거룩하게 영혼을 가꾸어 가는 귀한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