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5 치유의 이름 예수 (사도행전 3장 11-17절)

하루 3번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유대인들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의 얼굴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 세 번씩이나 그 앞을 지나가는데 어찌 얼굴을 모르겠습니까? 그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껏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이 풍경을 본 유대인들은 두 눈이 휘둥그래 졌습니다. 분명 앉은뱅이에게 치유와 회복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자 신이 나서 성전 곳곳을 방방 뛰고 있는 앉은뱅이를 유심히 관찰하였습니다. 이윽고 앉은뱅이는 자신에게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 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가가 그들을 붙잡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회복과 치유가 바로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부터 나온 것임을 깨닫고 더욱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요한이 얼마 전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스승이 살아 생전에 기적을 일으켰던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성전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치유 사건으로 인해 기도하던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는 이 때를 기회 삼아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앉은뱅이가 걷게 된 사건은 자신과 요한이 가진 권능이나 경건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즉 베드로와 요한은 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계시다는 암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의 상당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이 기적을 일으키셨다고 이야기할 때 유대인들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오늘 본문 15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14-15절, 두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베드로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이 이 앉은뱅이를 자리에서 일으켰고, 그를 고치는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증거 했습니다. 베드로가 증거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고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16절 말씀을 보니 베드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완전히 낫게 되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진 능력은 오늘 이 순간 우리의 삶 속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회복과 치유의 유일한 근원이 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주님을 의지할 때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들을 찾아 나섭니다. 행복을 위해 돈을 많이 벌어 보기도 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세상 즐거움에 탐닉하여 살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갈증이 해소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마시면 마실수록 참 삶의 행복에 대한 갈증만 더해갈 뿐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 꼬이고, 복잡해지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유치원생 아이가 교실문을 열려고 아무리 밀어봐도 안 열립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밀어봐도 문이 꿈쩍도 안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와서 한 손으로 드르륵 문을 여는 거에요. 알고 보니 옆으로 여는 미닫이 문이었어요. 사람은 늘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에 갇혀 있곤 합니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고, 그것이 안되면 좌절하고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한계선을 긋습니다. 앉은뱅이도 그러했습니다. 여러 의사들도 만나보고, 약이란 약은 다 먹고, 치료란 치료는 다 받아봤을 것입니다. 그래도 낫지 않자, “이게 내 팔자인가 보다.”하고 평생 그렇게 앉은뱅이로 살았습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할 수 있는 것은 은과 금 뿐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이 자신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더 일찍 예수님께 두 다리를 고쳐달라고 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이 앉은뱅이가 저지른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살고 우리의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보고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안되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지.” 그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십니다. 우리의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하나님의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은 가능 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는 코로 호흡하듯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준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예수의 이름만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질병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을 힘들게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회복되어야 하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치유되어야 하는 질병의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오늘 이 새벽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준 믿음처럼 우리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예수님의 능력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의 기도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의 이름 예수, 생명의 이름 예수, 소망의 이름 예수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