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4 은과 금보다 값진 선물 (사도행전 3장 1-10절)

유대인들은 하루 세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오전 9시에 한 번, 정오에 한 번, 또한 오후 3시에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제 구시, 즉 오후 3시가 되자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누구라도 기도하러 올라가는 길에는 마음이 너그럽고 경건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잘 아는 앉은뱅이는 늘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맞추어 성전 미문에 앉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동정심을 갖고 던져주는 동전을 받아 먹고 사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니 이 사람이 날마다 앉아서 구걸하는 장소는 미문 즉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금 너무도 경건하고 거룩한 장소와 반대로 가장 불쌍하고 처량한 인생을 사는 앉은뱅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후 3시가 다가오자 많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매일 같은 장소에 앉아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불쌍해서 몇 번 도와줬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죠. 다들 눈을 피하고 모른 채 그를 지나갑니다. 때마침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이 앉은뱅이가 앉은 미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가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구걸했습니다. “여보시오. 한 푼만 도와줍시오.” 이 앉은뱅이를 본 베드로와 요한은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를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기도하러 가기 바쁜데 이 두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앉은뱅이도 혹시 이들이 기도응답이라도 받아 기분 좋아 적선이라도 하려나 보다 하고 기대감을 갖고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주려나?’하고 생각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처다 보았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앉은뱅이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그를 일으켰습니다. 곧 온 이스라엘이 놀라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앉은뱅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본 적 없습니다. 그런 이 사람의 발과 발목에 힘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었고 뛰어다녔습니다. 유대인의 법에 의하면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져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평생 성전 입구에만 있었을 뿐 성전 안은 들어가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던 이 사람이 다리가 낫자, 성전에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8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니 얼마나 신이 낫겠습니까? 아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숨이 차 오르도록 방방 뛰어다녔을 겁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광경을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자기들 앞에서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가 바로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그 사람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 앉은뱅이가 일어났지?” 유대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오늘 성경을 읽은 우리는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병이 낫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을 주었더라면 그는 잠시 동안은 기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남의 손에 의지하여 옮겨진 후 구걸해야 하는 비참한 인생을 계속 살아야 했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천만금을 주고서라도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일말의 믿음도 가능성도 갖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이 아니라 앉은뱅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주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사람을 온전케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처럼 파멸에서 생명으로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 되었던 이 사람처럼 비참한 운명에 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 이름 앞에 변화되지 못할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치료 못하실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이 이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3)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이는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이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사용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해졌기에 그들의 기도가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 생명의 이름, 능력의 이름, 소망의 이름, 예수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은과 금보다 더 값진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이 하루 이 놀라운 구세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으며,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모든 연약함과 죄악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