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0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27장 45-46절) – 고난주간 특별새백예배 4

유대인의 하루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삼시’라고 하면 새벽 6시에서 3시간을 더한 오전 9시가 됩니다. 성경에서 ‘육시’라고 하면 새벽 6시에서 여섯 시간을 더한 오후 12시가 됩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을 보면, 로마 병사들이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시간이 제 ‘삼시’ 입니다. 즉, 예수님은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45절 말씀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마 27:45)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앞서 언급했듯이 제 육시는 ‘정오’, 즉 오후 12시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3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때부터 하늘에 떠 있는 해가 그 밝은 빛을 가리우게 되고, 그 결과 온 땅에 컴컴한 어두움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제 구시, 즉 오후 3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온 땅에 임한 이 어두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십자가 사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에 검은 그림자가 머물고 있는 바로 그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앞두고 계신 제 구시, 오후 세시가 찾아왔습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듯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외침은 구약성경 시편 22편 1절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다윗의 탄식시를 주님께서 그대로 인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시는 본래 다윗이 하나님께 원수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시지 않으셨고, 지체하셨으며, 다윗은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노래로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했을 때, 여기서 ‘버리다’란 뜻을 가진 ‘사박다니’라는 단어는 단순히 내가 지금 눈 앞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을 의미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사바크’라는 히브리어 말에는 ‘완전히 포기한다’란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고개를 돌려 고통을 못 본 척하시고 외면하신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전히 자신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완전히 등을 돌리셨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을 십자가에서 짊어지셔야만 하셨습니다. 이 고독과 외로움은 사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의 반대말이 있다면 바로 ‘유기’입니다. ‘유기’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고독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을까요?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죄의 가장 큰 형벌인 유기,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까지도 당해야 하셨던 것입니다.십자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유기’를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앞둔 이 순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는 가장 큰 아픔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저주를 당해야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슬프고도 비통한 외침은 예수님께서 지고 계시는 우리의 죄책과 형벌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아냥 거리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적을 일으키셨던 예수가 정말 십자가에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지 한 번 지켜보자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엘리야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 즈음은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는 일보다 더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시지 않고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은 하나님께 유기를 철저하게 버림받으시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이따금씩, 우리들은 교회에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셔야 하는 빚을 지셨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 마음 속 자리 잡은 그 모든 것이 허울이고 껍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 자신이 진짜 어떤 존재인지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의 형벌과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앞에 서면,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앞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봉사한 일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에 비해서는 결코 크지 않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큰 고통이 바로 우리들이 받아야 했던 형벌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밑에 나아가 예수님의 몸에서 떨어지는 보배로운 피를 맞으며 우리 삶의 한 복판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중심에 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으면서까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이 주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시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