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는 몸이 비실비실하고, 눈빛이 흐리멍텅 하던 한 남학생이 이제 대학생이 되어서 군대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해병대를 지원한 이 청년은 훈련소의 모든 훈련을 무사히 다 마치고 드디어 첫 휴가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실 했던 그의 몸은 건강한 근육질로, 흐리멍텅하던 그의 눈빛은 살아있는 눈빛으로 변했습니다. 부모님도 몇 주 만에 의젓해 진 아들의 모습에 놀라고, 동생들도 형, 오빠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에는 기합이 들어가 있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훈련 기간을 통해 그는 귀신도 무서워 벌벌 떤다는 해병대로서의 자부심과 명예 긍지를 얻었습니다. 또한 그 어려운 훈련을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다 마쳤다는 자신감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면 그 사람 자체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적으로 비실비실하던 사람들입니다. 툭하면 예수님 마음 아프게 하고, 툭하면 예수님을 불신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보낸 병사들에게 잡히시던 밤, 그의 제자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한 걸음에 도망갔습니다. 검과 몽둥이를 들고 온 병사들을 보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심지어 3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에수님께서 병사들에게 잡혀 가셔서 공회 앞에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어디로 도망쳤는지 그 자취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에,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모일 때는 항상 문을 꽁꽁 잠가 두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제사장 서기관 무리들을 두려워하고 지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제자들과 똑같습니다. 복음을 전하긴 해야 하는데,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 상대방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당할가봐 두려워서 말을 잘 못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이 말하면 손해 볼 꺼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 중에도 전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제자들처럼 마음의 문, 입술의 문 꽁꽁 닫고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밥 먹으러 가자, 공 차러 가자, 놀러가자” 하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전도하러 가자” 그러면 잘 안 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두려워서 그래요.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난 3년 반 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이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제자들의 연약하고 소심한 모습이 180도 변화하게 된 커다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먼저, ‘오순절’이란 말은 유월절 이튿날부터 50일째되가 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 하신지 50일째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오순절에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 같은 혀들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두려워 방문을 꽁꽁 닫고 숨어서 지내던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입을 열어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해서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 중간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요, 그 심령 안에서 성령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령에 이끌려 복음을 나누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담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 자체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방언으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2장에서 나오는 방언은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를 의미합니다. 참 대단하죠? 한 번도 해외 나가서 유학해 본적도 없고, 외국어를 따로 공부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외국어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큰 절기 입니다. 때마침 오순절을 맞이하여 해외에 흩어져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다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큰 소리로 방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하는 외국어가 한 두개 정도 였다면 눈속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외국어를 동시에 했습니다. 9-11절을 보겠습니다.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말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복음을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앞서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하신 내용,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움츠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담대한 증인들로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성령에 충만한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증인들로 살아갔는지 그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자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증인’되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 일을 전하며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누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이 필요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참 증인들이 되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