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외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이후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는 자매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자매들이 몇 명인지 그들의 이름은 말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형제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본래 예수님 생전에는 동생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동생들이 예수님을 미치광이로 보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또 한 사람의 동생 유다… 오늘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가 바로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동생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다는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았겠습니까? 오늘날 길거리에 연예인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주목하고 수근수근 대듯이, 유다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 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예수님의 친동생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대 사회의 스타 였습니다.
사람이 권력에 가까이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내가 누구 아들인 줄 알아? 우리 아버지가 국회위원이야!” 하고 사고 치고 다니다가, 저녁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일비재 합니까? 유다도 자기 친형이 예수님인데 그럴 법 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누구 동생인 줄 알아? 우리 형이 나사렛 예수야!”하고 어깨에 힘 좀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유다는 전혀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유다서 1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이란 단어는 단순히 돈 받고 집에서 일해주는 집사나 하인을 칭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헬라어로 ‘둘로스’라는 단어로 ‘노예’라는 뜻입니다. 로마 시대 때 노예는 자신이 가진 재산도 주인의 것이요, 자신의 배우자, 자녀도 주인의 것이요, 자신의 생사권도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명령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둘로스 입니다. 유다는 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둘로스’, ‘주님의 노예’라고 소개 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 전에는 그가 정신분열자 혹은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나사렛에서 태어난 저 사람이 메시아일 수 있는가?”하고 유다는 자신의 형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주님의 참 실체를 깨닫게 되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는 당신의 둘로스(종)입니다.”하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가 누구냐? 예수가 누구인데 내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하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실체를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주님을 자신의 구원자요, 영혼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유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처음 예수님을 보았을 때 주님을 “선생님”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후에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되자, 베드로는 그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또다른 제자 도마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또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완고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앞에 나타나시자, 도마는 주님 앞에 엎드려 “나의 주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무를 꿇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정말 내 영혼의 구원자요, 내 생명의 근원이시요, 내 삶의 유일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동생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스스로 주를 섬기는 ‘종’, 둘로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이 억지로 예배를 드리고 강제로 섬기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도 자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유다에게는 예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섬기며 살아 가는 것이 그의 기쁨이요 행복이었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의 후렴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땅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그 땅을 사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라는 가장 귀한 인생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여러분에게 어떠한 분이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예수님은 나를 돕고, 내 소원을 들어주는 종이 되어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주종의 관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유다가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종이 되었듯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둘로스’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고, 남은 우리의 평생의 시간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둘로스’로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