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9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요한일서 3장 16-18절)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한 사람이 회심하는 데는 3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3가지가 다 있을 때만이 온전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이 3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머리의 회심”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던 자가, 이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성의 틀과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세상사람들은 물 위를 걷는 예수님,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가로 짓지만, “머리의 회심”을 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적으로서 이해가 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머리의
회심”입니다. 둘째는 “가슴의 회심”입니다. 예수 믿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어 집니다.
이전에는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욱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성질을 내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나니까 차분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던 마음이 용서와 이해로 바뀌어 집니다. 이것이
바로 “가슴의 회심” 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머리의 회심, 가슴의 회심에서 멈추어서는
안되고 마지막 세 번째 회심까지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마지막 세 번째 회심이
바로 “돈 지갑의 회심”입니다. 이전에는 돈을 가지고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사고 싶은 것, 내가 누리고 싶은 것… 내가, 내가, 내가… 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믿고 나니까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지갑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빵도 사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입을 옷도 사줍니다.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을 열어 선교사님들을 후원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과부와 고아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쌀도 사다 주고, 반찬도 사다 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처럼 그가 가진 재물을 사용하여 사랑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마지막 단계인 “돈 지갑의 회심”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목사님, 땅을 파면 $5달라자리 나옵니까? $10 달라가 나옵니까? 내가 남
눈치 보고, 밤잠도 줄여가며, 땀 흘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왜 내가 가진 재물,
내가 번 돈으로 이웃들을 도와주고 섬겨야 합니까?” 오늘 사도 요한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 하니라” 사람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은 잘 아는데, 요한일서 3장 16절은 잘 모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구원의
시작이라면, 요한일서 3장 16절은 구원 받은 자가 살아야할 마땅한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서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많은 물이 흘러 옵니다. 갈릴리 바다는 또 다른 곳으로 물을 흘려

보내기 때문에 물이 고이지 않고 썩지 않습니다. 사해 바다는 다릅니다. 사해 바다로
흘러 오는 물줄기는 많이 받는데 다른 곳으로 흘려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해
바다는 죽은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안에는 어떠한 생명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물줄기가 우리에게 흘려 왔을 때,
그것을 나만 가지고 있고 흘려 보내지 않으면 그 사랑은 점점 내 안에서 죽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흘려 보내지 않으면 우리 안에 영적 생명력인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일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전쟁으로 부모와 형제를 다 잃어버리고 3일간 굶주린
7살된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길을 지나던 행인이 이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가 소녀를
보고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냅니다. “저런, 얼마나 춥고 배고플까” 때마침 그에게는
빵과 우유 그리고 맛있게 익은 소고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는 눈물만 흘릴 뿐,
소녀를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무것도 내주지 않은 채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십중팔구 많은 사람들이 그 행인을 가리켜 악하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바로 이 행인같이 행동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이의 필요를
보고도 못 본채 하고, 내가 도울 형편이 충분하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요일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우리가 가난한 형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이상 우리 속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눈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내 몸으로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
했습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는 말과 혀로만 형제를 사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주지 않고 하는 사랑은 가짜 사랑 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주는 것 없이 하는 사랑, 희생 없이 하는 사랑은 결국
“자기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은 나에게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섬김과 행동으로 보여줄 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죽을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치셨다면 우리
모두는 지옥에 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증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과 혀로 사랑하시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차례 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시간으로,
우리가 가진 재물… 우리가 가진 것들을 필요한 이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사람들을 섬기고 희생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사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