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7 죄에 대해 민감하라 (요한1서 3장 1-9절)

공사판에서 일하는 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사방이 컴컴하고 아직 달이 떠 있는 이른 새벽 아버지는 작업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하루 종일 벽돌을 나르고, 흙을 퍼담고,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을 하고 나면 어느 새 해가 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지난 이삼십대에는 하루 자고 나면 몸이 다 회복되는 듯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허리는 더욱 뻐근하고 무릎은 힘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녀석 먹여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일하다 힘들 때면 아버지는 지갑 속 아들 사진을 꺼내보곤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꾹 참고 일해서 십만원을 받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아들은 철이 없습니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늘 돈 달라고 합니다. 친구들은 다 좋은 옷 입고, 브랜드 신발 신는데 자기는 이게 뭐냐고 아버지에게 신경질을 냅니다. 그것도 모자라 때로는 아버지가 잠에 들었을 때 몰래 지갑에서 만원자리 서 너 장 슬쩍 꺼내가곤 합니다. 그 돈 가지고 나가서 친구들 하고 밤새 술 마시고 희희 덕 거리고 놀다 옵니다. 우리가 이 이들을 길에서 만나면 “야, 이 놈아 정신차려랴!” 하고 머리에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이 철없는 아들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큰 희생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 베푸신 크신 희생을 생각한다면 쉽게 죄를 짓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무시한 채 우리들은 여전히 나 자신을 위해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주셨건만, 우리들은 여전히 죄에 빠져, 세상 즐거움을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여전히 우리는 죄 많은 철부지 자녀들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죄와 공존하려는 삶의 모습을 강하게 경계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민감하라”고 말했습니다. 3장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어떠한 큰 희생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성도가 살아야 할 마땅한 모습을 3절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정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죄 없으심 같이, 우리들도 죄로부터 깨끗함 받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의 특징은 죄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봅시다.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으면 죄 짓는 것이 싫어집니다. 왜냐하면 죄가 나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죄 짓는 것보다 하나님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더 기뻐하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 하고 있는지 아닌지 보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해보면 됩니다. ‘과연 내 안에 죄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나는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있는가?’ 만약 죄가 죄임을 알고도, 내가 지금 행하는 습관과 삶의 태도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악된 모습임을 깨닫고도 여전히 죄를 즐기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강한 어조로 이러한 삶의 태도를 경계 합니다.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죄를 짓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다 본래는 진노의 자식이요,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8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마귀의 계략을 파하고, 죄의 사슬을 끊어내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가 어찌 또 다시 스스로 마귀의 노예가 되려하고 죄악의 종이 되려 하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참 구원 받은 자의 표지는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참 하나님의 자녀는 그 마음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하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예수님 믿으면 100% 죄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연약한 인간이 어찌 죄 없이 살겠습니까? 우리도 여전히 언행의 실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면 고의적으로 죄악된 삶을 즐기고, 적극적으로 죄를 찾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가운데서도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세상 즐거움도 다 끊어낼 수 있는 결단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죄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깨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딸이라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죄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이 죄임을 기억하고 늘 깨어 하나님께 달려가기 위해 죄의 결박과 유혹을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함께 하기에 습관적인 죄들, 반복적인 죄들도 다 끊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하루 무감각하게 습관적으로 죄의 길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죄와 싸워 이기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은혜와 마음의 평강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