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아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쌓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주변 이방인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이후 16년 동안이나 멈추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점차 흐르자 백성들은 하나 둘 성전 건축에 대한 꿈을 저버린 채, 자기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엉성하게 나무로 지었던 임시 집들을 다시 부시고 이제는 멋진 벽돌집을 짓고 그 위에 지붕까지 올렸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리더들도 성전 짓는 일을 게을리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성전 지대만 놓고 지난 16년 동안 벽돌 하나 쌓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집은 훼파되었는데, 자기 집만 멋지게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다시 성전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결심도 오래 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보았던 백성의 어른들과 장로들이 새로 짓는 성전이 너무 초라하다고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총독 스룹바벨이 짓는 이 성전은 예전에 솔로몬이 지은 것에 비해 그 크기와 위세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낙망 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성전 지어봤자 뭐해… 어차피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비하면 작고 초라할 것인데. 이거 힘들게 벽돌 나르고 쌓아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거야…” 이러한 상실감과 패배의식 속에 사로잡혀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성전 건축하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또 다시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다시 말하면 “용기를 내라! 힘을 내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무려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스룹바벨과 백성들이 새로 짓는 성전이 겉으로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규모도 작고, 볼품 없을지 몰라도 나중에 지은 성전의 영광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영광보다 더 클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축복에 대한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은 힘을 내어 곧 다시금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짓고 난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시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신학적 질문이 두 가지 나옵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학 2: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여기 거룩한 고기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바친 고기로,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진 고기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고기가 거룩한 고기이기에 아무나 먹어서는 안되고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그 거룩한 고기가 온자락에 쌓여 있는데, 그 고기가 빵, 스프, 음료, 올리브 기름 같은 다른 것에 닿으면, 그 닿은 것들도 고기처럼 거룩한 것이 되겠는가?” 학개 선지자가 물어보자 제사장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 백성들은 제사만 드리면 신앙적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성도 중에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면 성도의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이 결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사의식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마음과 태도 입니다. 잘못된 태도를 가진 채 거룩한 고기를 드린다면 그 제사가 절대로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주님은 백성들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두번째 신학적 질문은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학 2: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앞서 언급한 대로 거룩한 것이 다른 물품에 닿는다고 해서 그것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다릅니다. 부정한 것이 닿으면 그 닿은 것도 부정해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죄를 지으며 점점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부정한 자에게 가까이하면 그 사람도 부정해지는 법입니다.
거룩한 고기가 닿은 것은 옮겨가지 않는데, 부정한 것은 닿으면 그 부정이 옮겨 갑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건강과도 비슷합니다. 한 집에 사는 두 형제가 있습니다. 큰 아들은 건강합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결핵에 걸렸습니다. 큰 아들이 건강하다고 작은 아들도 따라서 건강해 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한 것은 옮겨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작은 아들의 결핵은 큰 아들에게 옮겨갈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에게 있던 결핵병균이 큰 아들에게 옮겨 갑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신학적 질문을 통해서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정하게 살아왔는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제사의식 자체가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과, 백성들이 서로의 죄로 더욱 부정케 되었음을 밝히 알게하셨습니다.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2: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이처럼 부정한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의 성전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도 많고, 단점도 많고, 죄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입니다.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백성들이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부정한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땀 흘려 일하며 지난 3개월 동안 꾸준히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자, 하나님은 이들을 놀랍게 축복하셨습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2:15)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성전을 쌓기 시작한 기점으로 성전을 쌓기 전의 수입과 성전을 쌓은 후의 수입을 비교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성전을 짓지 않았을 때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온갖 병과 곰팡이와 우박을 땅에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벽돌을 쌓기 시작한 9월 24일부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19절 마지막에 뭐라고 약속하셨습니까?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백성들이 하나님 성전을 뒤로 한 채 잊어 버리고, 자기 살길 찾아 나서자 하나님은 복의 문을 굳게 닫아두시고 빗장까지 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성전을 쌓자, 이제껏 닫아 두셨던 복의 문을 활짝 열어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누구에게 복을 줄 것인가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은 주님께 복을 받습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성전을 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섬기고 수고하며 헌신하는 자에게 풍성한 복을 부어 주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하나님의 일을 가장 앞서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먹고 살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먼저 주님의 나라와 위해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나머지는 다 은혜와 복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놀라운 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우리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님들도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풍성한 하늘의 복을 크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