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습니다. 정신 없이 친구들과 구슬치기, 팽이치기 하고 놀다 보면 어느 새 해가 지고 서쪽 하늘에서부터 붉은 노을이 집니다. 강아지도 배가 고파 저녁밥을 바랄 즈음, 어머니는 큰 소리로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부릅니다. “아무개야, 집에 와서 밥 먹으러 와라” 참 신기한 것은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한 번도 다른 어머니 목소리를 따라가는 아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용케도 아이들은 자기 어머니 목소리를 알아 듣습니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음성을 잘 분별하여 듣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잘 분별하여 들어야 합니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세상은 야단법석 시끄러운 소리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아이도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고 말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도 또렷이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해서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복된 귀가 있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1: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여기서 ‘청종’이라는 말은 경청하고 복종했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가 전해주는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로 생각하고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자주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매” 혹은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라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야말로 모든 역사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노아가 인류의 역사를 이어 갔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듣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역은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럼 오늘 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말씀은 두 가지로 선포 됩니다. 첫째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으로 전파 됩니다. 따라서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가 죽었다고 한 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빌 게이츠는 유산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들이 얼마만큼의 돈을 남겼는지 유언장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우리가 그 아들들이라면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을 읽겠습니까? 안 읽겠습니까? 아마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빌 게이츠보다 더 부자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남겨주신 사랑의 편지 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보물과도 같이 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은 음성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12절에 학개 선지자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콩나무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이 쑥쑥 자라 있습니다. 설교 말씀도 동일합니다. 처음에는 예배 끝나면 뭔가 남은 게 없는 것 같다가도, 인생의 위기의 때 혹은 간절한 상황 때 예전에 들은 설교 말씀이 쏙 하고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설교 시간 들은 말씀이 가슴 속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가 말하자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가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혹시 주님의 음성도 듣지 못한 채 겉으로만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고요한 시간, 아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나 혼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이 새벽예배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을 들은 귀가 있는 사람이 복 된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섬기고 싶은 감동을 주십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섬겨야 겠다”, “우리 교회 이런 부분은 내가 섬겨야지”하는 섬김과 자원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워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려면 이런 마음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하는 것 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자를 더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13절 후반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주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백성들은 15년간 포기했던 성전을 쌓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이 솟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백성들을 감동하시고 그들을 움직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자 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그 음성을 무시하면 오디오의 볼륨을 줄이듯이 점차적으로 성령의 음성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성령의 음성이 더 확실하게 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세상의 시끄럽고 야단스러운 아우성 가운데서도 고요하고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