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6 무엇이 최우선인가 (학개 1장 1-11절)

 

우리가 지난 주 까지 살펴본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학개”는 성전 재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시대로 보면 학개가 느헤미야 보다 약 100 년 전 사람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따라서 아직 성벽은 다 훼파되고 무너져 있는 상태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다가 50년만에 고향 땅 예루살렘에 돌아온 백성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땅에서 자리잡고 살고 있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짓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 공사를 방해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성전을 짓는 일이 무려 15년 동안이나 지연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방해로 그 긴 15년 동안 백성들은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백성들은 하나 둘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대신 자기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성전 짓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성전을 짓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리더들도 성전건축에 열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하나님께 제사드릴 성전이 없이 15년간 살았습니다. 외부적 박해와 이방인의 방해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했다고는 하나, 어느 새 백성들도 성전 없이 살아가는 삶이 마치 당연한 듯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 나태함에 빠져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당시 백성의 리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2절 말씀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 집을 지을 때가 아니야… 아직 아니야’ 하고 차일피일 성전 짓는 일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성전 짓는 일을 최우선적인 삶의 과제로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신 이들은 자기 집을 짓는 일에는 힘써서 일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은 제쳐두고, 자기 집만 세우는 일에 헌신한 백성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1: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이 구절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아 성전이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는데 너희가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이 옳으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는 성전 재건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했던 작업입니다. 성전의 회복이 곧 제사의 회복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고 계시다는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하면 내 집을 멋지고 예쁘게 잘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에만 더 신경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은 제쳐두고 자기 살 궁리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1: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걸어온 길을 잘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이 물어보시는 거죠. 그 동안 무언가 좀 이상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심기는 많이 심었으나 거두기는 적게 거두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여전히 목마르며,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돈을 벌어도 마치 구멍 난 주머니에 넣은 것처럼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현상이 바로 하나님의 집은 뒤로 제쳐두고, 자기 집만 세운 결과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뒤로 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가르쳐 주시는 한 가지 중요한 삶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일해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수고의 떡을 먹고 잠을 줄여가며 일해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헛수고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복 주셔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합니까? 하나님은 주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먹고 사는 일 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깨닫고 그러한 마음을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 하십니다.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나머지 복은 고구마 줄기 캐듯 주렁주렁 다 따라옵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보다, 내 집, 내 비지니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복의 문을 닫아 버리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9절에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학 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 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내 집은 무너진 채로 남아 있는데 너희는 각자 자기 집 일에 바빴구나? 너희가 풍성함을 기대 했어도 조금 밖에 거두지 못했고, 너희가 집으로 가져간 것조차 내가 후하고 불어 버렸다.”

어린 아기들을 보면, 밥 먹어야 할 때 식탁에 앉아서도 장난감 가지고 노느라고 밥을 잘 먹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엄마한태 장난감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아기가 세상 억울한 듯 염소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웁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데, 세상 즐거움에 취해 있습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은 뒤로하고 돈, 쾌락 같은 세상 장난감에 푹 빠져 살아갑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거 빼앗아 가십니다. 돈에 빠져 하나님 멀리하면 하나님 그거 빼앗아 가시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 멀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즐거움도 빼앗아 가십니다. 엄마가 아기를 사랑해서 아기에게 밥 먹으라고 잠시 장난감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뒷전에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드리던 말든 하나님과 사귐이 있던 말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만 열심히 세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돈 버는데 정신이 팔려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놓고 살아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인생 사는 것입니다. 10-11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학 1: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학 1: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복의 문을 닫고 열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다 헛된 수고가 됩니다. 아무리 높이 쌓아 놓아도 다 허무하게 사라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우선시 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우선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주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