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4 말씀을 사모하는 삶 (느헤미야 8장 4-12절)

수십 년 전 만주에 사는 한국 교포 2세가 서울에 있는 극동 아시아방송에 조그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나이 어린 소년 방송의 청취자였으며, 그가 즐겨 듣는 방송은 신약성경을 천천히 읽어만 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소년은 자기가 그 방송 시간에 귀 기울여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말씀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유일한 성경은 제가 베껴 쓴 이 두꺼운 성경 공책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물이 풍족한 나라에 사는 사람은 물 귀한 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물 부족 국가에 사는 사람은 물줄기가 곧 생명줄기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성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나 쉽게 성경을 구할 수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은 성경 귀한 줄 모르고 살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소유하는 것조차 금지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성경을 ‘금’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값진 금괴를 주고서라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곧 내가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보니,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이 적혀 있는 책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그 앞에 앉아 있던 모든 백성들이 일어섰습니다. 오늘날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기가 일하는 방안에 들어오면, 아무리 급하게 하던 일이라도 그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들의 국가의 원수요 통치자인 대통령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자리에서 일어선다는 것은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책을 펼치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들은 이 책이야말로 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 중 하나의 책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책,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유일한 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경의하기 위해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으며 또한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성경을 펼치고, 주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했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저 유명한 시편 1편에서 다음과 고백하기를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무엇 합니까? “즐거워하여”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서 다윗이 쓴 “즐거워하다”는 말은 ‘값비싼 보석이나 보물을 발견했을 때’, 또는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기뻐할 때 쓰는 표현이 바로 ‘즐거워하여’ 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마치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뤄진 것처럼 기뻐합니다. 시편 1편을 기록한 다윗이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시편 119편에 기록된 그의 고백을 보면 (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19:24) 주의 교훈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상담자입니다.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하고 고백합니다.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율법을 읽을 때 마치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내 마음에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즐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뛰어난 저자요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기쁨과 만족을 주는 최고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이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 갈 때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성경을 읽은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기서 ‘광대하다’는 말은 ‘위대하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에스라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한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들이 “아멘 아멘”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맞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에스라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사 에스라와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참여한 율법 낭독은 단순한 의식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적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써 새롭게 시작된 2018년의 첫 번째달도 1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놓은 장소에서,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을 찾아오시고 성경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 귀한 하루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시고 주야로 읽고 묵상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