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3 말씀 앞에 엎드린 주의 백성 (느헤미야 8장 1-3절)

우리에게 새해 첫날은 1월 1일 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새해 첫날은 1월이 아니라 7월 입니다. 오늘 본문속 이스랑레 백성들이 바로 새해 첫날인 칠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새해는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성전이 완공 되었으며, 또한 무너져 내린 성벽도 다 복원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80 여 년간 진행되어 온 긴 역사가 드디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해 첫날이 밝아왔습니다. 누가 보아도 축제라도 벌여야 마땅한 희망찬 이 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갈망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이들이 새해 첫날 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1절 말씀을 보니,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기록된 시절에는 아직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오늘날처럼 성경이 많지 않았습니다. 성경이라 해봐야 파피루스나 두루마리 같은 종이에 서기관이 성경을 직접 필사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 몇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학사요 제사장인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 지었다 한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사고 차를 사면 다 될 것 같지만, 막상 집을 사고 차를 사도 우리 마음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더 넓은 집을 사려하고 더 좋은 차를 사봅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그 허전함이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에 대한 내적인 배고픔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었습니다. 팡세를 쓴 파스칼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존재한다. 이 공백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공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심히 성전을 짓고 무너진 성벽을 잘 쌓아도 여전히 말씀을 통한 본질적인 채움이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참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겉은 화려하게 살고 있으나 그 속은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죽어 있는 사람 입니다.

교회 건물이 아무리 화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유럽의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 건축물들이 술집으로 팔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힘썼으나, 정작 그 안에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등한시 했습니다.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수많은 이들이 다녀간 교회라 하더라도 말씀이 없는 교회는 생명력이 없기에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은 다 쓰러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교회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으면 그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 말씀 때문에 살아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혈액이 순환하지 않고 멈춰버리면 죽게 됩니다. 바로 이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영적 혈액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을 마무리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집회의 더 특이한 점은 리더들이 계획한 모임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성회는 지도자들이 구상하여 이뤄져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학사 에스라에게 요청하여 이루어진 집회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벽을 쌓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에는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를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8:2)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자, 드디어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부탁 받은 대로 새해 첫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2절 3절 말씀을 보면 두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표현이 하나 보입니다. 여러분 보이세요?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이란 표현입니다. 지금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회중 중에 누가 있습니까? 남자, 여자는 모든 성별이 다 함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릇 알아 들을 만한 회중”은 누구일까요? 바로 어린 아이들을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들도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몸은 안 듣는 거 같아도, 귀는 다 듣고 있습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한나의 아들 선지자 사무엘도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인 엘리도 제사장인 엘리의 아들들도 듣지 못했으나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오직 어린 아이인 사무엘만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영적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인들에게만 찾아와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찾아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에스라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그곳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씀을 듣고 이해할 만한 어린아이들까지 모여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영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뛰어난 영적 자녀들을 많이 둔 교회가 가장 영적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바로 그 교회의 내일이고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말씀으로 변화할 때 교회는 놀라운 부흥의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오늘 에스라 목사님이 이들에게 말씀을 전한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니까요, 수문 앞 광장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말씀을 전했습니까? “새벽부터 오정까지…” 영어 성경을 보면 ‘Daybreak to Noon’ 그러니까 “컴컴한 하늘에 해가 뜨기 시작할 때부터 정오까지” 입니다. 학자들에 따라 견해 차이는 있습니다만 대략 5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봅니다. 지금 이들은 설교 시간만 여섯 시간 되는 예배를 이들이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만약 코너스톤 교회 새벽예배를 왔는데 점심시간 때까지 쉬지 않고 설교를 한다면… 오늘 11시 주일예배가 오후 다섯시까지 계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게 쉬운 집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탁월한 명강사가 와서 설교해도요 6시간 연속으로한다설교 한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치지 않겠습니까? 물론 에스라 목사님 혼자서 이 집회를 인도한 것은 아닙니다. 4절 말씀을 보니까요 학사 에스라가 이 집회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나무 강단에 서 있고 그의 우편에 6명 좌편에 7명, 총 13명이 그와 함께 서 있습니다. 즉 에스라 목사님 혼자서 6시간 되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 강단 위에 올라와 있는 나머지 13명과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장시간 동안 집회를 하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대한 영적 굶주림 즉 말씀을 강하게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먹는 것 보다도 그 어떤 일보다도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어요? 학사 에스라가 주님의 말씀을 백성들 앞에서 읽을 때 이들이 어떻게 듣습니까? 3절을 보니까..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어떻게 반응합니까?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여기서 쓰인 “귀 기울이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향해 약속하시며 “너희가 이 전에서 기도하면 내가 그 기도에 귀 기울이겠다.” 할 때 말씀하신 바로 그 단어 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듣는데 그냥 편안한 자세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여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개가 뼈다귀를 물고 있는 걸 보신적 있으십니까? 개는 뼈다귀를 보는 순간 그 개의 온 신경이 뼈다귀에 가 있습니다.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개는 뼈를 물고 늘어지고 또 핥고 빨고 있는 힘을 다해 뼈다귀를 상대합니다. 세상에 뼈다귀 만난 개보다 행복한 개는 또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뼈다귀 만난 개의 모습처럼 하나님 말씀을 사모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길까요? 매일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하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또 읽고 또 읽고…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이러합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성경책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 또 살아가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해 주는 기회를 누릴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사흘 굶은 자에게 주어진 빵처럼 하나님 말씀에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목회자, 말씀을 배우려 하지 않는 성도. 말씀이 사라지는 교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식당 가서 밥 먹고 오면 배라도 부른데, 교회는 갔다 와도 여전히 영혼이 배고픕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영적으로 굶주리게 됩니다. 영적 베들레헴인 교회에 생명의 떡이 없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 교회에는 영적 기근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말씀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더 사모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