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군의 비밀작전을 파악하지 못해 자꾸만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영국의 과확자들에 의해 독일군의 작전이 적힌 암호를 풀어냄으로서 전쟁에서 큰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적군의 전략을 파악하는 것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도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는 은밀한 전략으로 성도를 넘어 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의 전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적군의 계략을 간파하여 승리한 느헤미야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제사장 스마야는 집밖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가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느헤미야를 만난 제사장 스마야를 은밀하게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느헤미야씨, 오늘 밤 적군이 그대를 죽이러 올 것입니다. 살고 싶지 않소? 제가 방법을 알려드리리이다. 당신과 제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서 만나 성전 문을 닫읍시다. 그러면 당신은 살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참 좋은 제안입니다. 느헤미야도 적군이 쳐들어오면 몸을 숨길 은신처가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성전 안 ‘외소’란 공간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레위인 출신의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제사망 스마야의 말대로 외소에 들어가면 분명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대로 성전 안 외소는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제사장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을 어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거절 했습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는 이 백성의 리더입니다. 나 같은 리더가 어떻게 이 큰 일, 위대한 일을 앞두고 도망가겠습니까?” 느헤미야는 자신이 가지는 상징적 위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는 성벽을 쌓는 백성의 우두머리 입니다. 이 일에 가장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적군이 무서워 성벽 짓는 거 포기하고 숨어버리면, 나머지 사람들도 다 도망칠 것이 뻔합니다.
서양의 Chess나 혹은 동양의 장기를 보면 왕만 잡으면 경기가 끝나게 됩니다. 이 규칙은 동서양이 다 동일합니다. 전쟁터에서 장군이 도망가면 그 나머지 병사들도 그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 스마야에게 “지금 백성을 이끌고 있는 리더의 위치에 서 있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겠습니까?”하고 대답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나 이 교회 목사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뒷걸음쳐도 난 그럴 수 없습니다! 나 이 교회 집사입니다. 나 이 교회 권사입니다. 나 이 교회 장로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이 교회를 지킬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담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11절 말씀에 보니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다시 말하면, “나 같은 일반백성이 어찌 제사장만 들어가는 외소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겠습니까? 아무리 내 목숨이 위협받는다 한들 나는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순 없습니다.” 하고 느헤미야가 스마야에게 단호하게 말한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고 두려울수록 오히려 느헤미야처럼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람답게 더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 넘어지지 않고 올바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사장 스마야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제사장이 아닌 느헤미야를 성전의 외소로 초대한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니, 역시 이 모든 것은 적의 계략이요, 원수가 파놓은 함정이었습니다. 제사장 스마야는 느헤미야의 대적들에게 뇌물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외소에 들어가게 하여 흠을 잡아 그를 리더의 위치에서 끌어 내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내부에서 적과 내통하는 자들이 스마야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4절을 보니 여선지 노아야와 그 남은 선지자들까지도 느헤미야를 낙담케 하려고 그에게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적의 공격은 이토록 은밀하고 치밀합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든 죄를 짓게 해서 넘어뜨리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접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적들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 낙담케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격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느헤미야는 적들의 이러한 공격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끝까지 성벽 공사를 이루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15-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6: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완성 되었습니다. 지난 20 여 년간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불과 52일이라는 비교적 단시간에 이뤄낸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이제는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아닌 그들의 대적들이 두려워하고 낙담하기 시작합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놀라운 역사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대적들도 이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는 자들이 결국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느헤미야를 낙담케 하려던 자들이 오히려 낙담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벌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에게도 이와 같은 낙담의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어쩌면 느헤미야의 대적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속으로 “너희가 하는 일은 도저히 가망 없는 일이라” 하며 비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 뒤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역사는 반드시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서 세워가셨듯이, 교회는 주님의 손으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교회를 대적하여 우리를 두렵게 하던 자들이 두려워 하게 될 것입니다. 낙담케 하려던 오히려 낙담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한 것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여 한 걸음 한걸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 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더 큰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