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선수는 3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라운드를 뜁니다. 그리고 종이 울리면 1분간 휴식을 취하고 또다시 2라운드를 뜁니다. 이런 식으로 세계 쳄피언 대화는 12라운드까지 갑니다. 아무리 1라운드에서 성적이 좋은 선수라도 마지막 라운드의 종이 울리기까지는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자치 방심하다가는 금방 역전 당할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도 1라운드로 끝나지 않습니다. 잠깐 쉬고 나면 그 다음 라운드가 또 찾아옵니다. 축구로 따지면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듯이… 아무리 지금 이기고 있어도 마지막 후반전 심판이 휘슬 불 때까지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산발랏은 1라운드 때 말로 느헤미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잘 참아내자 이제 두 번째 공격을 가합니다. 7-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산발랏과 원수들이 협박하고 조롱해도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계속해서 성벽을 쌓아가자, 이제는 직접 몸으로 나서서 성벽 재건 공사를 훼방 놓으려 합니다.
공포영화를 보면 살인자가 주인공이 손 총에 맞아 쓰러 집니다. 그러면 관객은 “아 이제 끝이구나.” 하고 안심합니다. 그런데 살인자가 조금 있으면 안 죽고 또 살아나서 공격하곤 합니다. 사단도 맷집이 있어습니다. 우리가 날린 원투 펀치 들어갔다고 마냥 좋아하고 있으면 사단이 사정없이 반격해 옵니다. 축구도요 우리가 선재 골 넣으면 상대편도 더 공격적으로 반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기도하고, 날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봅시다. 여기서 산발랏과 도비야는 북쪽 사마리아 군사를 의미합니다, 아바리아 사람들은 남쪽을, 암몬 사람들은 동쪽을, 아스돗 사람들은 서쪽을 의미합니다. 원수 산발랏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더 큰 군사들과 연합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하는 현장을 공격하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이제 산발랏이 말로만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협박합니다. ‘우리가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너희의 목숨까지 빼앗아갈 것이다”하고 겁을 줍니다. 뉴스를 보면 북한이 허구한 날 김정은 앞에서 무기 열병식 하면서 거대한 미사일 보여주지 않습니까? 전쟁은 안 하는데 무기 자랑은 엄청 합니다. 군사력을 보여주며 상대편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산발랏의 전술이 이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의 특징은 실속은 없는데 계속해서 큰소리만 치며 허세를 부리며 겁을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올 때 왕의 호위병들과 함께 왔고 예루살렘 군사들도 있기 때문에 지금 산발랏과 원수들도 그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엄포만 놓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보호 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사단이라도 함부로 우리를 건들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2절을 봅시다. (4: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성벽 재건 공사는 멀리 사는 사람들도 참여했습니다. 그 도시의 남자들이 대거 와서 성벽을 짓고 있으니까, 산발랏이 남정내들이 떠나 비어버린 마을을 공격하겠다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무려 열 번이나 공사현장까지 찾아와서 ‘성벽 그만 짓고 어서 집으로 돌아와요.’하고 애원했습니다.
과연 느헤미야는 어떻게 또 다시 이 어려움을 이겨냈을까요? 우리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여태까지 기도하며 묵묵부답으로 성을 쌓오던 느헤미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는 성벽을 쌓던 백성들을 성 뒤 낮고 넓은 곳으로 집합시킵니다.
본문 13절에 기록 된 ‘성 뒤 낮고 넓은 곳’이라는 표현은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이는 땅을 의미합니다. 원수들도 지금 백성들이 모여 있는 곳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그들을 칼부대, 창부대, 활부대로 편성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제적인 방안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학교 부흥이 목표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수행 방안들을 시행할 것인지 분명한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순모임을 활성 시키고자 한다면 그를 위해 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예배 회복에 대한 더욱더 구체적인 실행 가능한 대안 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원수의 공격에 대항하여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일 하는 자가 무기를 함께 지니고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 답을 제시하기까지 수많은 기도와 고민이 필요한 법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이 일을 위해 지난 시간 계속해서 기도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오늘 느헤미야는 자기 앞에 모인 모든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이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적군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14절 말씀에 느헤미야가 누구를 위해 싸우라고 말합니까?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것은 네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한 일이다!” 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면 그들의 가정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 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집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내 삶도 무너집니다. 왜 교회를 세우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왜 예배를 세워가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합니까? 그것은 우리 모든 삶이 교회와 예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원수의 공격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벽을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파도를 넘어가야 합니다. 저 드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자가 다가오는 파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피하기 위해 배를 옆으로 돌리면 배가 파도에 의해 뒤집히게 됩니다. 따라서 노련한 항해사일수록 배의 정면으로 파도를 돌파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파도를 피하지 않고 파도를 넘어갑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수많은 파도 같은 어려움들과 고난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은 있어도 포기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의 파도를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모든 고난의 파도보다 더 크신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파도를 넘어가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