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부터 느헤미야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죄로 무너진 개인의 신앙과 하나님의 집을 바로 세우며 재건한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의 삶을 통해, 새해를 시작하며 무너져 있던 우리의 신앙생활의 영역들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서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남 유다는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적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도 다 훼파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도 그 중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바벨론은 신흥강국 페르시아에게 멸망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사’라는 나라가 바로 페르시아 입니다.) 페르시아는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었으며, 큰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이전에 바벨론의 전쟁 노예로 잡혀 온 사람 중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들을에게 관직을 주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궁에서 술 관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이미 왕의 술관원으로 일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던 왕들은, 늘 적들의 음모와 배신으로 독살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적들이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음식에 독을 탈 것을 염려하여 왕이 먹을 음료와 음식을 책임지고 또한 먼저 먹어보는 자들을 세웠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왕을 배신하게 되면 바로 왕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왕이 먹을 음료와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나 세우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신뢰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며, 왕의 주변에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느헤미야가 바로 왕의 목숨과 직결되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술 관원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전쟁의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 출신으로서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의 최고권력자인 왕을 보필하는 고위 관직으로 뽑혔다는 것은 오늘날 백악관에서 대통령 최측근 인사가 된 것과 동일합니다. 청와대 비서실장급입니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마음만 먹으면 평생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바로 그의 형제 하나니가 예루살렘 성에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느헤미야는 멸망에 버린 고국 유다 땅을 방문하고 돌아온 형제 하나니에게 고국의 형편을 묻게 됩니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TV나 신문이 없기에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듣지 않고는 페르시아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유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에게 슬픈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유다가 망하였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옴을 면함 받고 고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 그들은 고국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있었고 능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부서진 채로 있었고, 성문들을 불탄 채로 있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살면서 한 번도 고국 이스라엘 땅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 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모가 미국에 이민와서 낳은 한인 2세 아들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형제 하나니로부터 고국 유다의 소식을 듣게 되자 그의 마음에 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수일 동안 털썩 주저앉아 울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왜 느헤미야는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적도 없고 밟아 본 적이 없는 고국의 소식을 듣고 이렇게 금식하며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이 당하는 능욕’을 ‘하나님에 대한 능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당하는 수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느헤미야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관계 없는 일이다.’하고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들이 겪는 아픔을 자신의 일로 여겼습니다. 저들의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았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부서진 채로 있고 성문들이 불탄 채로 있는 형편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현 시대에 가장 큰 비극은 슬퍼해야할 광경을 보고도 슬퍼하지 못하는 무딘 심령으로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삶이 힘든 사람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슴 아파 하는 일에 함께 가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에서 수백킬로미터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이스라엘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지금 페르시아 왕궁에 있습니다. 가장 부요한 환경에 사는 그는 마음만 먹으면 자기 배만 채우며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자 그는 그것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여기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당하는 환난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바라 본 것이 아니라, 내 부모 형제 사는 집에 불이 나 무너지는 것을 바라 보고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수일 동안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 느헤미야의 심정을 가집시다. 나의 형편에 대해서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들과 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스포츠로 따지면 우리는 개인 종목 선수가 아니라, 팀 종목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달리고 있어도, 같은 팀 동료가 넘어져 있으면 나 자신도 결국에는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한 해에는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