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출전한 달리기 선수 중 무거운 짐을 매고 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듭니다. 옷도 두꺼운 것이 아닌 얇은 것을 선택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짐이란, 죄악의 짐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얽매이게 하는 짐입니다. 우리 영혼이 세상에 속해 있을 수록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어렵게하는 죄의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경주자들이 가진 또하나의 특징은 결승선을 바라보고 경기를 하는데 있습니다. 결승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면 넘어지기 쉽고,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따라서 경주자는 결승선을 바라보고 뛰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결승선은 바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합니다.
오래 달리기를 하다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포인트를 가리켜 Dead Point ‘사점’이라고 부릅니다. 사점은 격렬한 운동 중에 산소 부채로 인하여 호흡이 곤란하고 운동을 중지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사점에 도달하게 되면 머리 속에서도 “이제 그만 달리자. 이 즈음에서 멈추자. 충분히 달릴만큼 했다. 더 달리면 몸에 무리가 올 것이야.”하며 달리기를 멈추어야 할 이유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달리다가 ‘사점’에 도달하면 달리기를 멈춥니다.
이러한 현상은 육신의 달리기 뿐만 아니라, 믿음의 경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은 잠시 잠깐 뛰고 멈추는 단거리가 아니라, 매일매일 경주하는 장거리 종목 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도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의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달리기 경주자가 ‘사점’을 통과하기 위해서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 고통을 인내하고 경주를 이어가듯이 믿음의 경주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며 인내를 필요로 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당하는 징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봅시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아버지는 자녀가 옳바른 길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도 자녀들을 징계합니다. 자녀가 미워서 매를 드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사랑해서 매를 드는 것이죠.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향해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바른 길, 의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징계하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훈육하듯이,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벌을 주시고, 그의 아들로 받아들인 자들을 채찍질하십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받는 고난을 아버지의 징계로 받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절을 봅시다.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이 부분이 한글성경만 보면 참 해석하기가 애매합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게 다시 원문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고난을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로 알고, 고난을 견뎌내라.”
악인에게 있어서 징계는 벌이고 심판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징계는 아버지의 사랑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징계가 고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벌 주듯이 우리들을 징계 하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아들을 훈계하기 마련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자식을 훈계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짜 아들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사생아 일 것입니다.
유치원생 딸이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떄리고 혼내서라도 거짓말하는 습관을 고칠 것입니다. 국민학생 아들이 친구의 물건을 슬쩍 훔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고 혼내서라도 이 잘못된 태도를 고칠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징계는 다 자녀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징계는 다 우리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그 징계가 달갑지 않고, 괴로운 것 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부모님의 징계가 있었기에 우리가 바른 길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절을 봅시다.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 하나님의 징계로 단련을 받은 후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고 평강의 열매는 의롭게 산 사람이 누리게 될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않은 죄의 길을 가고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를 내리실 것입니다. 지금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다면 징계를 당해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징계가 싫지만 지나고 나면 이것이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징계를 이겨낼 수 있는 인내를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내를 구하며 나아간다면 반드시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하루도 인내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