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6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 (히브리서 10장 19-25절)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소는 제사장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어가는 공간으로,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향을 피우고, 새로 구운 빵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라 불리는 커튼이 세워져 있었으며, 지성소에는 제사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날 손에 피를 담아 들어갔습니다.

이 내용이 레위기 16장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 16: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레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처럼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에는 철저하게 구별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휘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막고 있는 장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분해주는 가림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던 순간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쉽게 찢어질만한 재질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사실 찢으려면 꽤 힘이 듭니다. 휘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인해 찢어진 것입니다.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지성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장애물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오직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가 열렸습니다. 본래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이전에는 오직 아론의 후손들 중에 대제사장으로 뽑힌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성소는 빈손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피를 들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는 새로운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를 힘입어 하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19절 말씀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지성소’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무나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지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을 보던 대제사장들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인하여 그 안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금방울이 달린 옷을 입었고, 그의 허리에 끊을 묶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금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지성소 밖에 있던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 끊을 잡아 당겨 그를 꺼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도 지성소 들어갈 때는 엄청난 긴장을 하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가는 우리는 담대합니다. 19절에 담력을 얻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 자신이 있습니까?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다 씻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막혀 있었던 휘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열렸습니다.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완전하게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2절을 보면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져 우리 영혼을 정결케 했다는 말입니다. 또 22절을 보면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세례를 말합니다. 영혼은 예수의 피로 자유함을 받고, 몸은 세례로 씻음을 받은 자들… 바로 우리들 아닙니까?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2절 마지막에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말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자는 말입니다. 이는 사실 대단히 놀라운 문장입니다. 우리들은 본래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죄가 다 용서함 받았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야할 모습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3-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선행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가끔 주변 사람들 중 “꼭 교회가야 구원받나? 하나님은 어디든지 다 계시잖아?” 하는 식으로 말하며 모이기를 거부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가까이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믿음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돌아보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하나만 잘 믿고 천국가는 것…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믿음을 잘 지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가 주님의 말씀대로 모이기를 힘쓰고,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