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3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애가 3장 19-33절)

한 아버지가 매를 들고 유치원생 어린 아들을 혼내고 있습니다. 아들은 매 맞은 두 종아리가 너무 아파 또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들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아빠는 날 미워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매로 날 혼낼리가 없어…” 아들은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가 어떠한 마음으로 자기를 혼내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린 아들이 자라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이제는 그가 매를 듭니다. 그제서야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를 들고 훈계하는 것은 아버지도 꺼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를 듭니다. 자녀의 몸에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매를 드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매 맞은 몸이 아프겠지만, 그로 인해 더 좋은 사람, 더 바른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이 매를 드는 부모의 마음 입니다.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죄를 범한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벌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마치 냉정한 심판자처럼 오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징벌 하시는 이유는 징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징계를 통해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죄를 뉘우치므로 말미암아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매를 든 아버지가 여전히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 이듯이, 심판을 베푸는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러한 성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분명 지금 그가 직면하고 있는 눈 앞에 현실은 고난과 괴로움, 쓰라림과 고통 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고, 전쟁의 패배로 인해 사방에 시신이 뒹굴고 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저미도록 아픕니다. 여기저기서 신음과 탄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아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고, 아무런 꿈과 소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암울한 현실만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야를 돌려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자 그의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심을 그는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가 3:22-23) 저는 이 2구절을 꼭 암송하시라고 권면 해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즉 복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에는 아주 중요한 단어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로 ‘자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비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자에게 벌을 면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 입니다. 아버지가 정말 귀중하게 여기는 값비싼 도자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스치듯 건들기만 해도 아버지에게 혼이 납니다. 어느 날 그 집 어린 아들이 집에서 놀다가 실수로 그만 도자기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아들은 평상시 아버지께서 도자기를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알기에 아버지에게 혼 줄이 날 줄 알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집에서 쫓아내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이 집에서 못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떻게 깨진 도자기와 비슷한 거라고 구해 볼 방법이 없을까?” 불안해 하며 떨고 있습니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깨진 도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도자기를 깨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안그래도 평상시에도 엄한 아버지이신데 이제 나는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꽉 안아주며 물어봤습니다. “너 어디 다친데는 없느냐?” 너무나도 비싼 도자기이기에 다른 사람이 깨뜨렸으면 그 값을 물어 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고 벌을 면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세드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헤세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죄로 인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지만 헤세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벌을 면해 주셨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들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받아 망했어도 진작 망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오늘 날 우리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죄를 짓고, 죄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수많은 죄들을 헤세드로 용서해 주고 계십니다.

22절을 보면 둘째로 ‘긍휼’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들이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서 18장 23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 18:23) 히브리어로 ‘긍휼’이란 단어는 ‘레헴’ 입니다. 이 단어는 여성의 ‘자궁’을 뜻합니다. 히브리어로 ‘긍휼’이란 단어는 마치 어머니가 그 품 안에 몸 안에 있는 아기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아기가 누군가에게는 단지 수십 억 명 중에 한 사람 정도 밖에 안되는 평범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엄마에게 만큼은 자신의 목숨을 다 주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사랑스런 존재 입니다. 그것이 바로 레켐, 긍휼 입니다. 하나님의 바로 이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죽는 것을 그대로만 바라보고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놓듯이,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불쌍히 여기심,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레켐의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여호와의 자비(헤세드)와 긍휼(레켐)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다함이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죄를 짓고 산 사람도 오늘 다시 주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바로 복음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크레파스를 가지고 온 통 하얀 벽지 위에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립니다. 엄마가 고이 접어 둔 옷을 옷장에서 마구마구 꺼냅니다. 쌀통을 엎어서 온 바닥에 쌀이 뒹굽니다. 아이 키우는 어머니들은 자신의 집을 보고 ‘전쟁터’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죠. 그래도 어머니는 어떻게 합니까? 또 다시 그 엉망인 집을 치우고 정리하며 아이를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저도 생각해 보면 국민하교 시절 참 많은 말썽을 부렸습니다. 집 앞 논가에 가서 친구들과 올챙이, 개구리, 물방개 잡으려고 한참을 놀다보면 운동화, 운동화 속 양발, 바지 다 진흙투성이가 됩니다. 어리니까 더러워진다는 것을 몰라서 그 채로 집에 들어갑니다. 그럼 집안 여기저기 흙 천지가 됩니다. 또 돋보기를 가지고 태양열을 모아서 검은 봉지 태우는게 너무 재미 있어서 장난 치다가 집안 장판도 태워 먹었습니다. 정말 말썽 많이 부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 번도 우리 아버지가 한 번도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나가라. 너는 더 이상 김영목이 아니다. 너는 오늘부터 최영목으로 살아라, 이영목이 되던지 박영목이 되던지 해라”하고 저를 내쫓으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사고를 쳐도 부모님은 저를 그 때에만 혼내실 뿐, 여전히 저를 아들로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도 동일 하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택하신 자녀들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고아와 같이 홀로 버려 두지도 않으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날마다 우리 삶 속에 부어지는 이 다함 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인해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