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2 믿음으로 부르는 슬픔의 노래 (애가 3장 1-18절)

우리에게 진달래 꽃이란 시로 잘 알려진 김소월 시인의 작품 중에 ‘초혼’ 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절절한 사랑에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아무리 불러보아도 더 이상 내 마음이 사랑하는 님에게 닿지 않는 안타까운 시인의 심정이 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시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바로 이런 안타까움 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고 또 기다려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두 눈으로 보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가슴이 너무도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 그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남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슬픔과 고통, 불행과 죽음을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하루 종일 손을 들어 계속 치셨다.”고 말했으며, 4절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고, 그 뼈를 꺾으셨다고 까지 탄식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가장 힘들어 한 이유가 8절에 있습니다. (애 3:8) “내가 부르짖고 도움을 구하여도 그는 내 기도를 거절하시며”라고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기도해 보아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대적들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그가 나를 포위하여 무거운 쇠사슬을 채웠으니 내가 도망갈 수 없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9절 말씀을 보니 심지어 큰 돌을 사방에 쌓아 놓아서 숨을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어 재앙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누구라도 우리 주님과 같이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니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 같고, 은밀한 곳의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나거나 사자를 만났다고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십중팔구 ‘나는 이제 죽었구나!’하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바로 이 곰과 사자처럼 두려운 재앙을 심판으로 내리시는 분이 되셨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궁수가 되셔서 활을 당겨 그를 과녁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니 그 화살이 가슴에 명중하여 심장을 꿰뚫어 버렸습니다. 전능자가 쏜 화살을 맞았으니 남 유다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예루살렘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온 나라가 죽은 것처럼 멸망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5절에 쓴 것으로 배를 채우셨다는 것은 고통으로 그들의 인생을 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16절에 보니 그가 자갈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도 부러뜨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재로 덮어버렸습니다. 예레미야의 삶에 평안도 빼앗기고 행복도 잊어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입니까?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 마저도 18절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 3: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과 평강을 누리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과 평강은 이스라엘을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할 때는 하나님의 화살이 대적을 향해 쏘였지만,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죄악을 저지르자 그 화살이 이제는 이스라엘 자신에게도 돌이켜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주님의 백성은 조롱거리로 전락합니다. 또한 삶에 찾아오는 평강과 행복이 끊기고 멀리 떠나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재앙들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그는 남의 일 구경하듯 본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인생이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바라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큰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이대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란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오랜 침묵에 실망하여 기도를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물은 변화하여 기쁨이 되고, 슬픔이 변화여 기쁨의 춤이 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있었으나, 예레미야는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우리 역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침묵하시는 것 같은 시간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 없으시고 계속해서 삶의 고통과 불행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본 받아야 합니다. 예리미야 선지자는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만 붙들었습니다. 슬픔 가운데서도 성도는 끝까지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