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8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열왕기하 23 35-24 7)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되었을 당시 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패권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다른 약소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이익에 맞는 진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미국이 있는 자유진영 쪽에, 또 다른 나라들은 소련이 이끄는 공산진영으로 붙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세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자유 진영에 붙은 나라들과 공산진영에 붙은 나라들의 운명은 180도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살펴보면 애굽과 바벨론 이 두 개의 나라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애굽이 바벨론을 치기 위해 갈그미스로 올라가던 길을 남 유다 요시야 왕이 가로 막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과 전투하다 큰 부상을 입고 죽게 됩니다. 이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을 죽인 애굽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갖게 되고, 반애굽 정책을 펼친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게 됩니다. 반애굽 정책을 가진 여호아하스가 남 유다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애굽에 정해지자, 애굽 왕 바로는 여호아하스 왕을 붙잡아 애굽으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친애굽 정책을 펼친 요시야 왕의 장남 여호와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벨론의 세력이 점차 강해졌고 결국 바벨론은 남 유다까지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는 수 없이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기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친애굽 정책을 펼치던 여호야김은 3년 만에 바벨론 왕을 배신하고 다시 애굽 편에 붙게 됩니다. 그 사건이 24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 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그러나 여호야김은 시대를 잘 못 판단했습니다. 애굽은 지는 해였지만, 바벨론은 떠오르는 태양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남 유다에 융단폭격 같은 집중포화가 이뤄집니다. 2절 말씀을 보면, 갈대아 부대, 아람 부대, 모압 부대, 암몬부대가 다 남 유다를 치러 옵니다. 결국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눈에 보이는 인간의 역사 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일어난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4장 3절을 “이 일이 유다에 임한 것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볼 때는 인간인간들 역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인류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택하면 남 유다가 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힘과 권력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습니다. 따라서 여호야김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바벨론도 애굽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붙 잡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라는 말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위기에 처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죽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팬을 들고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는 주인공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품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지만, 작가는 다릅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통틀어 볼 수 있고 또한 주인공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상황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원하면 죽을 병에 걸린 주인공을 살릴 수도 있고, 벼랑 끝 위기에서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급해 지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죠. 그러나 만일 우리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한다면 결국 우리는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 속 여호야김은 애굽의 권력과 힘에 빌붙었습니다. 그는 애굽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온 세상을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우리 인생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들은 더 이상 어떤 고난도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의 권세나 힘을 가진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결국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콧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을 뿐입니다. 이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내 삶 속에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