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7 뿌리 깊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열왕기하 23 25-34)

밥을 먹은 후 그릇을 씻지 않고 오래 남겨두면, 그릇에 달라붙은 음식 찌꺼기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설거지하기가 더욱 힘들어 집니다. 요리를 하거나 식사 후 곧바로 씻어버리는 것이 설거지를 가장 편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죄도 마찬가지 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곧바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지, 죄를 가만히 놔두면 점점 양심이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죄가 만연 해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죄가 죄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도둑질도 처음 할 때는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지만, 두 번 세 번 자꾸만 하다보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자연스러운 행동인냥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서 양심이 고장 났다고 말합니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신앙적인 모습으로 보자면, 죄를 짓고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남 유다에 이어져 내려온 우상숭배는 이제 백성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오래된 죄악을 반대하여 남 유다의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전국에 있는 모든 산당들을 제거하고, 우상들을 위해 세워놓은 제단들까지도 다 제거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니 “(왕하 23: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로 요시야는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긍휼을 베푸실만 하건만, 오늘 본문은 여전히 하나님의 타오르는 진노가 남 유다를 향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26절 말씀을 보니 “(왕하 23: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므낫세는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 입니다. 므낫세는 남 유다 최악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남 유다에 우상과 이방 제단들을 들여왔고, 무당과 점쟁이들을 들여왔습니다. 그 결과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남 유다에는 은밀한 우상숭배가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고 남 유다를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왕하 23: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이미 죄를 지은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남 유다 역시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해 버릴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로 약속하신 성전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던 남 유다 백성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 믿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절대로 자기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항하고 죄악이 쌓여가자 하나님은 이들을 버리시고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악이 자행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32절 말씀입니다. “(왕하 23:32)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요시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의 죄는 끊어지지 못했습니다. 뿌리 깊은 죄 때문에 결국 남 유다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암은 초기에 잡아야 합니다. 암이 온 몸에 다 퍼지고 나거나 말기에 암을 잡으려 하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죄도 마찬가지 입니다. 죄가 우리 영혼에 깊이 뿌리 내린 후에는 제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한 번만 하고 그만하자.”하는 은밀한 죄의 유혹들을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한 번만 하면, 반드시 다음 번에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죄는 지을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도 여전히 남 유다에 죄악들이 만연해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들이 있습니다. 16세기의 신학자 존 칼빈은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칼빈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개혁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회는 개혁된 상태로만 있으면 안되고 항상 개혁 되어가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도 약하고 또 악해서 “지난 번에 한 번 개혁했으니까 다 해결 되었겠지.”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새 또 다시 이전에 지었던 죄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날마다 거울을 보고 지난날 잠자리에서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듯이, 우리는 날마다 내 삶이 혹시 죄로 인해 헝클어진 곳은 없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가 우리 삶에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바로바로 하나님께 죄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듯이, 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하루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 막고 있는 죄들을 끊어 내시고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하나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져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