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7 방심한 히스기야가 남긴 오점 (열왕기하 20 12-21)

 

남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왕이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내었습니다. 사실 가장 큰 목적은 히스기야 왕이 죽기 전에 남 유다의 군사적 도움을 얻기 위한 전략적 로비 였습니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이 남 유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치신 후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얼마 전 앗수르와의 전쟁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또한 조금 전에는 죽을 병에 걸렸다가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 기분 좋은 상태에서 바벨론 왕이 보낸 사신을 통해 편지와 예물을 받았으니, 히스기야 왕의 마음이 한 순간 교만 해졌습니다. 히스기야는 우쭐한 마음으로 바벨론 사절달에게 남 유다 왕국의 화려한 영광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왕하 20:13) 히스기야는 자신이 얼마나 화려하고 멋진 왕국에서 사는지, 얼마나 부자 왕인지 뽐내며 바벨론 사신에게 남 유다의 보물창고와 금고를 다 보여 주었습니다. 타국에서 온 사절단에게 잠자는 장소와 음식은 최고급으로 대접해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갑니다만, 타국의 사신에게 나라의 전 재산을 다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입니다. 바벨론의 사신이 보여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히스기야가 자발적으로 다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히스기야가 얼마나 우쭐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게 됩니다. 역사적인 문헌을 살펴보면, 히스기야의 또 다른 마음은 군사력이 강한 바벨론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침입을 저지하려는 속셈도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려는 행위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이 사건 이후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짐짓 모른 체하며 왕에게 슬며시 물어보았습니다. “왕이시여, 이 사람들이 왕에게 무슨 말을 하였으며 또 이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히스기야는 이들이 바벨론 사람임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또 한 번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히스기야가 대답하기를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보았으며 궁전 창고에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왕의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궁전 창고에 쌓아 둔 그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며 또 왕의 아들 중 몇 사람이 끌려가 바벨론 왕의 궁전에서 내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사야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과 히스기야의 자손들과 유다 백성들이 전쟁 포로로 잡혀 끌려 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히스기야였다면 이러한 예언을 들으면 당장 무릎이라도 꿇고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잘 못했습니다. 다 저의 불찰 입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주님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을 듣고 어찌 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기의 후손들과 백성들이 전쟁의 포로로 끌려간다는데 어찌 왕이 슬피 부르짖으며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히스기야는 정말 끔찍한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왕하 20:19)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듣는 히스기야의 반응은 너무나도 악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님 그럼 이 모든 재앙이 내 후손에게만 일어나고 내 때에는 안 일어 나는 겁니까? 좋습니다. 나만 아니면 됩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선합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 해졌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교만 해지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히스기야처럼 미련한 사람처럼 반응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1절은 히스기야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 자기 조상들 곁에 장사되었고…” 그런데 그 다음 표현이 의미심장 합니다.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왜 이 말이 중요합니까?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남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2번씩이나 남 유다가 멸망케 된 가장 직접적이고 큰 원인이 바로 ‘므낫세’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6절을 찾아봅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왕하 23:26) 24장 3절을 보면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왕하 24:3)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큰 죄들 때문에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게 됩니다. 또한 므낫세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쇠사슬로 결박 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만일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자신의 교만함을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너무나도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 학자들은 “히스기야의 교만이 남 유다의 멸망의 도화선에 불을 켰다.”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히스기야는 한 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잘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의 방심이 그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약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히스기야와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좇고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 우리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시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