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 나이, 직업에 대해 물어 볼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을 기억하고 호칭하기 위해서, ‘나이’는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서 물어 봅니다. 그렇다면 ‘직업’은 왜 물어 보는 것일까요?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가장 많이 해온 행동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살면서 운동을 가장 많이 했다면, 그는 운동선수일 것이고, 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그는 음악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지 주목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자요, 하나님의 백성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은 전혀 다른 실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성읍에 산당을 세웠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은 제단이며, 우상에게 제사 드리는 장소였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이런 산당을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읍… 이 표현은 전국 시군구 가리지 않고 읍면리와 같은 작은 마을까지 다 산당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온통 우상을 섬기는 산당으로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산마다 우상을 세워두고 푸르른 나무 밑에다가 나무로 만든 우상과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우상을 세워두었습니다. 우상이 얼마나 많이 세워졌는지… 비유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 세워진 우상이 오늘날 길가에 신호등처럼 찾기 쉬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산당에서 우상에게 기도하고 절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지 말라고 하신 율법을 어긴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아니요. 콧방귀 뀌며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을 굳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처럼 더 악한 죄를 짓는데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사람을 본받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경계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두 마리의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으며,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나무로 된 우상을 만들고, 심지어 낮에는 해에게, 밤에는 달과 별들에게 절하고 숭배했습니다. 사라진 줄만한 알았던 바알 우상이 다시 나타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아들과 딸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사를 드리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보고 마술을 행하는 무당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을 모아 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시고 그들을 그 땅에서 추방해 버리셨습니다. 즉 이방 민족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전쟁포로와 노예로 끌려가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
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습니다. 모세시절에는 온 백성이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사무엘 선지자 시절에는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다윗 시절에는 온 백성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런 이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이방 사람들의 행위들을 그대로 본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을 보시겠습니까?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장이 방향을 가르쳐주는 나침반을 보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항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표류’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제아무리 베테랑 신자라 할지라도 그는 신앙의 표류를 시작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자, 이방인들보다 더 악한 죄를 서슴지 않고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참 멸망을 향해 치닫아갈 때 이사야 선지자는 죄가 가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사 55:6-7)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 한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라”, “그만 죄를 멈추어라”,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들의 영적 표류도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표류의 끝은 파멸과 멸망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등한시 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심판과 벌로 인해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해버린 것을 경계 삼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실 수 있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