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성실하고 정직한 성전 수리자 (열왕기하 12 9-16)

 

식당 주인과 손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식당을 대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손님은 식당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식당 바닥에 휴지조각이 있어도 줍지 않고, 더러우면 오히려 주인을 비난합니다. 식당이 잘 안되면 ‘다른 식당 가면 그만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손님과 마음이 완전히 다릅니다. 식당이 곧 자신의 삶과 직결됩니다. 주인은 바닥에 떨어진 휴지조각 하나 그대로 놔둘 수 없는 법입니다. 무심한 손님이 깨뜨린 유리컵 하나에도 주인에겐 자기 마음이 깨진 듯하고, 누군가의 장난으로 없어진 식기 하나도 자기 재산 없어진 듯 안타까워 하기 마련입니다. 주인과 손님은 마음이 다릅니다.

교회 안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있고, 손님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성도는 교회의 필요에 민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살려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안해도 나는 자원해서 섬깁니다. 그러나 손님의식을 가진 성도는 교회의 필요에 둔감합니다. 남이 안하는 거 나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일이 생겨서 다른 성도들이 울 때… “뭐 이 교회 아니면 다른 교회도 있으니까..” 하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손님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적어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아스 왕은 주인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실세다’란 식의 교만한 주인의식이 아니라, ‘책임감’이란 면에서의 주인의식을 말합니다. 그는 요아스 왕은 퇴락한 성전을 보며 가슴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에게 성전 보수할 것을 명령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제사장들은 이 일에 진전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이에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한 후 성전 보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헌금이 제사장에게 가면 성전 건축을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아스 왕은 아예 성전건축을 위한 헌금상자를 따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헌금궤에 은이 많이 차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은을 계수를 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보수를 감독하는 자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또 다시 은을 목수와 미장이와 석수들에게 필요에 따라 지급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 헌금은 성전 보수를 위한 물건과 자재들을 구입하는데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성전 수리를 감독하는 자들은 성실하게 맡은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어떠한 부정축재도 없고 일꾼들에게도 정당하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꾼들도 열과 성을 다하여 성전 수리에 힘을 썼으며, 퇴락했던 성전은 하루가 다르게 복원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에 백성들도 헌금이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위하여 쓰이는 것을 보자 더욱더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 보수를 위한 헌금으로 동참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기구들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생활하다 보면 헌금 바구니나 마이크 시설이나 등등 필요한 물품들이 있습니다. 당시 성전에서도 은 그릇이나 나팔 같이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것을 구입하기 전에 먼저 우선적으로 필요한 성전 보수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헌금의 본래 목적이 성전 보수였기에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성전 건축 헌금도 다른 곳에 쓰였는데, 지금은 오로지 성전 보수에만 쓰이고 있으니 이들이 얼마나 청렴하고 정직하게 헌금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전 건축 헌금은 오로지 목수, 미장이, 석수와 같은 일하는 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15절에 보면 (12: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들이 일꾼들에게 금전 사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그들은 믿을 수 있을 만큼 성실하게 돈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물품구입 영수증’이나 ‘Invoice’ 제출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일꾼들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성전을 수리했다는 것입니다.

요아스 왕으로부터 시작된 성전 보수에 대한 열정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제사장들이 자기 배만 채우려고 급급했는데, 이제는 온 이스라엘이 한 마음으로 성전 보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습니다. 명을 내린 요아스 왕은 끝까지 이 일을 책임지며 헌금궤를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였고, 현장을 담당한 일꾼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성전을 수리했으며, 성전 보수를 위한 헌금을 내는 백성들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될 때만 해도 성전에는 거미줄이 곳곳에 보일 만큼 더럽고 먼지가 쌓여 있었고 건물이 무너진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아스가 왕이 된 지 23년만에 드디어 성전이 본래의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게 이 일을 보셨을까요?

오늘 우리도 교회를 보며 이러한 열심과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보며, 매번 똑같이 교회 와서 예배 드리고 친교 나누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허물어진 부분은 없는지, 내가 보수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이것이 꼭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물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고,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외로운 사람이 보이면 그 분에게 찾아가서 한 번 더 말을 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허물어진 부분을 세우는 것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역들 가운데 더 나은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고, 내 은사를 활용하여 섬겨 나가는 것입니다. 코너스톤 교회가 이런 사역 현장에서의 고민과 열심과 섬김이 없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교회 성장과 부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이 교회 안에서 어떤 것들을 보수해가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시설이든지, 그렇지 않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섬김과 사역이든지 우리는 허물어진 곳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하나님께서 내 눈에 보여주신 필요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은 못 보는데 유독 나에게만 보이는 필요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분은 부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뭐가 필요한지 잘 봅니다. 어떤 분은 교회의 천장 어디어디를 고쳐야하는지 잘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잘 봅니다.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사역하다 보면 “나는 이게 정말 필요하다고 보는데 왜 저 사람은 보지 못할까?”하는 질문이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내가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절대로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사람마다 각각 다른 필요들을 보여주십니다. 석수는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에 관한 보수의 필요를 보았고, 목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시설물들에 대한 보수의 필요를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허물어진 부분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교회의 필요를 보여주신 그 곳에서부터 섬김을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속한 이 교회 안에서 보수 되어야 하는 허물어진 사역들을 함께 세워갑시다. 그리하여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교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교회.. 그런 복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성실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