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이 10 Billion 달라의 가치를 가진 성공한 한 기업가가 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합니다. 그와 같이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사람은 밤에 한 숨도 자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담당 의사로부터 폐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 입니다. 내년에도 살아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고, 당장 다음 달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숨쉬고 있을 지 장담조차 할 수 없습니다. 평생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느라 건강은 잃어버리고 대신 다 써보지도 못할 돈만 잔뜩 통장에 넣어 놓은 셈이죠.
흔히 사람들은 재산이 많은 사람이 부요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많은 것들을 다 소유한다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말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잃어버리면 나머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 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생명을 가진 사람은 죽은 자 보다 낫습니다. 인간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 인간은 인류 대표인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생명’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원한 죽음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죽어서 지옥에 가야할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인 셈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이 죽음 앞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미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란 운명이 놓인 우리들에게 바람처럼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그 많은 것들을 다 누린다 한들 생명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과 저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곧 생명 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예수의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가치를 발견했기에 복음을 위해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은혜를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은혜에서 미끄러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을 의심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불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인간에게 생명을 심어 주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경고 합니다. 1절 입니다.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이 세상 금보다도 귀합니다. 바울은 그 귀한 은혜를 방치하지 말고 잘 간직하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씨앗이 길가에 떨어질 때 새가 와서 주워 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들 안에 들어간 복음을 원수들에게 빼앗기지 말도록 경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아직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구원 받을 기회가 열려 있다고 선포합니다. 2절 입니다.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구원의 기회가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습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불신하고 의혹을 갖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회는 사리지게 되며, 마음은 점점 완악해져서 결국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아직 은혜의 기회가 열려 있는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도록 권면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복음의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스스로의 몸가짐을 주의하여 아무에게도 걸려 넘어지는 시험 거리가 되지 않도록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 전파 하며 받는 그 모진 고난들을 다 참고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4-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고후 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고후 6: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모두 9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는 이 고난들은 바울이 다 겪은 것들 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 모든 고난들 가운데도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복음은 봄 바람에 민들레 꽃씨 날라가 듯, 가만히 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같이 모진 고통과 고난들을 다 인내하며 전해야 하는 것이 복음 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많은 환난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며, 잠도 자지 못하고 수 차례 굶주림에 처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난 당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당연히 인내해야 할 것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서도 영적 순결을 지켰습니다. 6-7절 입니다. “(고후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여기에는 총 8개의 목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그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어떠한 자세로 주의를 기울여가며 사역했는지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 앞에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복음의 능력으로 사역 했습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고린도 교회는 그를 향해 ‘사기꾼’이라 욕하고 그를 멀리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 상황에서 얼마나 외롭고 가슴 아팠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인정 받은 받은 사도였으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의 사도직까지도 의심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복음으로 기뻐하며 살아갔습니다. 9-10절이 바로 사도 바울의 유명한 고백 입니다.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부요한 사람은 아닙니다. 반면에 이 세상의 것들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가난한 사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풍성하게 소유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있다가 사라질 헛된 것, 썩을 것에 주목하지 마십시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영원하고 변함없고 복음으로 참된 부요한 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