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4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두라 (신명기 24장 17-22절)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신 24:18)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신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구약성경에서 가난한 자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세 부류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전쟁이 빈번이 일어났던 고대 사회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의학이 현대처럼 발달하지 않은 이유로 전염병이나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면 가난하여 먹고 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과부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부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남편이 병으로 인해 죽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가정의 경제적인 면을 대부분 남자들이 짊어지는 시대였기에,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과부들은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가난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아나 과부의 경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고아는 나이가 어려 일할 수 없고, 과부의 경우 아이가 있어서 일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사회적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 일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계층들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가난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재판을 억울하게 진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객은 나그네들을 의미합니다. 나그네나 고아나 과부는 가장 약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 불쌍한 이웃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바로 이런 자들을 향하여 계십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환난에 처한 자들을 돌아보아 보호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재판을 할 때도 이들이 가난하단 이유로 억울한 판결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17절에 보면 이들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이들의 옷을 전당잡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은 그냥 옷의 기능만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당시 겉옷은 가난한 자들이 덮고 자는 ‘blanket’ 역할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만일 옷을 밤새 전당 잡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밤새 추위에 떨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이웃들의 필수품인 옷을 전당잡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도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고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 말씀을 봅시다. “(신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농부가 밭에 나가서 곡식을 베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곡식 한 다발을 가지고 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밭에 가서 잊어버린 곡식 한 다발 가지고 오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시 밭에 돌아가서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난하고 굶주린 나그네, 고아, 과부가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비심을 베풀 것을 원하십니다. 19절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자비심을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비롭게 행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20-21절도 같은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 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0절은 감람나무를 떤 후에 남은 것까지도 모조리 가져 가려고 살피지 말고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는 명령입니다. 21절은 포도를 딴 후에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배만 채울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어려움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2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애굽 땅에서 종으로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한 때는 그들도 가난했고, 굶주렸고, 헐벗었고, 연약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자비를 베푸사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봐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야 하는 차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갖는 것이 아니라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계속해서 물을 흘려 보내기 때문에 온갖 생물들이 싱싱하게 생명력 넘치게 살아 있습니다만, 사해는 물을 품고 있기에 물이 썩어 이름 그대로 죽은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을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로 우리 삶에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