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3 말씀을 받고 실천하라 (야고보서 1장 19-27절)

귀는 두개이고 입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귀를 두 개 주신 이유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 위한 것이고, 인간에게 하나의 입만 주신 이유는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이며,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은 좀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한 집에서 함께 사는 부부도 서로의 깊은 속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고, 자녀들은 자녀대로 바쁘다 보니 부모 자녀 사이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지 못하고, 피상적인 대화만 오가기도 합니다. 일하기 바쁘고, 취미생활 하며 놀기 바쁘고, 넷플릭스 혹은 유튜브 보기 바쁘지만, 정작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시간은 만들 시간은 갖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도 오늘 누군가 진득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보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주의를 기울여 잘 들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그의 말에 경청하라는 뜻입니다. 성의를 가지고 진지하게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들으려는 자세로 관심을 갖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듣기는 속히 하라”는 이 말씀은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에, 듣기는 속히 할 것이지만, 말할 때는 더디하라는 말씀을 살펴보면, 대화를 나눔에 있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난 이후에 해야 할 말을 신중하게 생각한 후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고, 기도를 오래한다고 해도, 자신의 언어생활을 제어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경건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26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영국의 수상을 지낸 처칠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켜서 체하는 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양의 속담 중에 “최고의 대접은 손님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며, 이는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고 신중히 생각하여 대답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이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일치해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잠언에서 살펴보았듯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화를 내는 것은 미련한 자의 특징입니다. 야고보서에는 분노에 사로잡힌 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분노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온유와 인내를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온유하고, 힘든 상황을 인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의로움이 자라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바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성을 낸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사람이 화가 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훗날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성내기를 더디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로움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모든 더러운 것과 잘못된 악행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논밭에 식물을 심기 전에 돌멩이를 제거하고 잡초를 뽑아야 하듯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기 전에 죄악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렸다면, 그 담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온유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죄악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여 줍니다.

22절 말씀입니다.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와 마음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눈에 보이게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또 아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 외울 정도로 말씀을 많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보다 예수님께 책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또 없습니다. 말씀을 듣기만하고 그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23-24절에서는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보기는 하지만 그 모양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 거울은 유리가 아니라 동으로 만들어져 거울에 비취는 모습은 매우 희미했습니다. 주의 깊게 보지 않고 거울을 보면, 거울을 보고도 돌아서면 자기 모습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지키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미한 거울처럼, 그들의 삶에는 말씀이 희미하게 나타나지 않고, 거울을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처럼, 그들 역시 말씀을 듣고도 삶 속에서 완전히 잊고 살아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 속에 적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바로 이와 같은 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봅시다.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그 말씀은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자에게 그와 같은 놀라운 축복이 주어집니다. 경건한 사람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죄악을 제거하고,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또한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자가 참으로 경건한 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 날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의로움이 자라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