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3) 하나님의 속성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은 삶이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지시해주는 규칙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배우지 않고서는, 우리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없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성경은 사람에게 무엇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을까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번째 질문이 바로 이에 대한 물입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총 두 가지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한 번 머리 속으로 수 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큰 도서관을 하나 상상해 보십시오. 각 분야에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은 성경이 다루지 않는 정보들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한국 역사와 미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과학 서적처럼 원자가 무엇인지, 전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예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학창시절이 어떠했는지 전혀 모르고, 다만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제작된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주제,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을 것은 무엇인가?”(What man is to believe concerning God)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하시는가?”(What duty God requires of man) 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비록 성경이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다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이 세상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제대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그가 가진 지혜와 탐구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해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들의 지식에서 완전히 배제하였기에 세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똑같은 과학자라 할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이 세상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마치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마치 평생을 동굴 속에서 살아가면서 동굴이 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동굴 밖에 나가 푸르른 하늘과 드넓은 평원을 발견한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성경의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분을 믿도록 만들어줍니다. 또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비교하여 이 세상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도록 만들어 줍니다. 바로 이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드신 세상이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배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둘째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길인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믿음’과 ‘순종’이라는 두 가지 열매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믿음’과 ‘순종’ 이 두가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 우리는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배웠으나,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아니하는 삶이 바로 죽음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삶입니다. 참 기독교는 믿음과 행위가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곧 행위로 연결되고, 참된 순종은 오직 올바른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마치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으로부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의무를 수행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행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경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이며, 둘째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하고 계시는가?’라는 주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바로 이 두 가지 주제를 따라 1부와 2부로 나누어집니다. 자, 그렇다면 곧바로 1부로 들어가 봅시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자연이나 사물이 무엇인지 정의 내린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인간이 정의내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 스스로 사람에게 나타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고, 불변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총 10가지로 정의하였습니다. 이 10가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는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속성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인간도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이 가진 지혜의 차이는 무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에게도 지혜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도 인간도 공유하고 있는 속성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속성에는 인간에게는 발견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속성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인간은 육체로 존재합니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속성인지, 아니면 인간에게도 찾을 수 있는 공유된 속성인지를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비공유적 속성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고 인간에게는 없는 속성입니다.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과 인간이 모두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한 속성들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인간은 갖고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속성, 비공유적인 속성에 무엇이 있는지 봅시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 하십시다. 하나님은 영원 하십시다. 하나님은 불변 하십니다. 이 4가지가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비공유적 속성”입니다. 이 중 가장 먼저 하나님은 영이란 사실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물질로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인간은 뼈와 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상과 의자는 나무로 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공기도 산소와 질소 그 밖의 다른 기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은 다릅니다. 주님은 물질로 존재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이 몸을 갖고 계시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분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드는 것을 죄로 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조각하든지, 그림으로 형상화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럼 모든 영적인 존재가 다 하나님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천사도 영이고, 악마도 영입니다. 따라서 모든 영적인 존재가 다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도 영적인 존재이며, 우리의 원수 사탄도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도 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 다른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시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비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과 같이 육체로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죠? 그런데 왜 성경에는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손’과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역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경 구절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처럼 두 눈이 있으셔서 보시고, 두 귀가 있으셔서 들으시고, 입이 있으셔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읽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성경의 표현인 것이지,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 사람처럼 뼈와 살로 된 육체를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이 없어도 볼 수 있고, 귀가 없어도 들을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말씀하시고, 손이 없이도 우리를 안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체와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은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2022년이란 제한된 시간 속에서 그레이스레이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시에 1990년 혹은 2030년에 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육체이기에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 존재합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이처럼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다 존재하십니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다른 영적 존재들과의 차이입니다. 비록 천사와 사탄 그리고 귀신들도 영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그들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천사와 사탄도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공간에도 제약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실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한 분이십니까? 천사도, 사탄도 모두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 중에 불변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봅시다.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아니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 불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이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6장을 보면 온 인류가 죄악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며 인간을 창조하신 후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일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한 것을 보고 ‘후회’하실 수 있을까요? 이 장면은 마치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처럼 변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불변성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사울을 세워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도 있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이야 연약하기에 그의 선택을 후회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찌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후회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는다면 이 문제는 금방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변화한 것입니다. 엄마가 평상시에는 아이를 보고 방긋 미소 짓고 환하게 웃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친구의 물건을 훔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엄마의 표정이 180도 변화합니다. 엄마가 변화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엄마는 똑같습니다. 다만 아이가 변화한 것이죠. 엄마는 일관되게 아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후회’에 대한 표현들은 변화한 인간의 영적 상태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을 의미할 뿐,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마음이 왔다 갔다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에 대해서는 기뻐하시지만, 악에 대해서는 분노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함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공유적 속성
하나님은 영이신데,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십니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나타나는 비공유적 속성이라면, 하나님과 인간 둘 다 모두에게 나타나는 공유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 수많은 피조물들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그 존재 자체로 이미 존귀합니다.
지금 우리 눈 앞에 거울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내 모습이 빛에 반사되어 투영되었을 뿐입니다. 거울 속 비취는 우리 모습은 우리의 실체가 아닙니다. 거울 속 존재는 살아 있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거울 속의 나도 두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습니다. 거울 속 비취는 내 모습은 나의 image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지혜와 권능 즉 힘과 거룩함과 공의와 인자와 진실함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이 가진 속성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가 어찌 같으며,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능과 인간의 권능이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은 우리의 삶을 순종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고, 불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