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에서 활발하게 전도하고 있는 빌립 집사, 어느 날 그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빌립아, 너는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가사는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라, 블레셋의 대표적인 거주지입니다. 오늘날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가자지구가 바로 ‘가사’입니다. 그러니 이곳은 신약성경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피하는 도시였습니다. 빌립은 이곳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가사에 내려갈 이유도 없고, 내려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아무게야 너, 그거 하지 말고. 이거 해라.” 하고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는 그 마음에 주신 감동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때로는 머리로 전혀 이해가 안가도,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면 그 길에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빌립 역시 가사에 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길은 광야 길입니다. 무척이나 걸어가기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빌립은 두 말없이 순종하여 가사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도중에 에티오피아 사람을 한 사람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였습니다. 비록 에티오피아 사람이었지만, 그는 진지한 태도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내시는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 이 내시가 예배 드리기 위하여 지나온 거리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이집트 남쪽, 나일강 상류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500km, 약 90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거리에 4배나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우리는 이 에티오피아 내시가 하나님을 얼마나 큰 열심으로 섬기고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는 길에도 놀고 먹고 쉬는 것이 아니라, 경건하게 이샤아서를 읽고 있으니 그는 참 신실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 내시가 지금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쩌면, 그의 여정 거리를 계산해 볼 때 그의 인생에서 예루살렘에 다녀오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누가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평생 예수님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긴급한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서 빌립 집사를 긴급히 남부 광야로 파송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이 모든 상황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저 주의 사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저 마차로 가까이 다가가거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지금 이 에티오피아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람이 타고 가는 마차나, 그를 수행하는 종들을 봐서는 분명 범인이 아니라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이 예수님의 복음에 배타적이라면 자칫하면 그의 종들에게 큰 핍박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빌립은 두 말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차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마침 내시는 소리 내어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마차로 달려가서 그에게 “지금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소?”라고 대답하면서 빌립에게 마차에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날 내시가 읽고 있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양처럼 끌려갔고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해 이 땅에서 그의 생명을 빼앗겼으니 누가 이 세대의 악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 7-8절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내시는 빌립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여기 기록된 이 말씀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예언자 자신을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빌립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처음 보는 에티오피아 내시가 타고 있는 차에 함께 타서 그에게 사영리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한참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던 이들은 마침 물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여기 물이 있소. 내가 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이어 마차가 멈추고 이 두 사람은 함께 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립은 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경은 빌립이 세례를 준 이후, 성령께서 그를 이끌어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시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전해준 복음은 평생토록 그의 가슴 안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39절 말씀을 보면, 이 내시는 “매우 기뻐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고, 그로 인해 기쁨이 가득한 채로 고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빌립을 사마리아에서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빌립이 불순종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빌립은 자신이 가야하는 곳이 광야임을 알았음에도 하나님께 불만을 표하거나 원성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었고, 내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건만,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복음 전파의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우리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함을 받는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삶의 은혜가 찾아오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계획, 우리의 모든 생각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