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0 아버지 다윗, 왕 다윗 (삼하 19장 1-15절)

다윗은 압살롬으로 인하여 통곡하며 슬퍼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에서 “내 아들아”하고 무려 4번이나 외치며 울부짖던 다윗은 사무엘하 19장 4절에서도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며 “내 아들아”를 3번씩이나 부르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을 반역한 압살롬이지만, 다윗은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 속에서 매우 강렬하게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통치자로서의 다윗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다윗이 슬픔에 지배당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군사들이 어려운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그들을 격려하거나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군대는 승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패잔병처럼 조용히 성으로 귀환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슬픔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 것입니다.
이 때 군대장관 요압이 등장합니다. 요압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승리하고 돌아온 군대를 다윗이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직언했습니다. “오늘 왕께서는 왕의 모든 군대를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오늘 왕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왕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심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압살롬이 살고 우리 모두가 죽었더라면, 왕께서는 오히려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자, 이제는 나가셔서 왕의 종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살아 계신 여호와께 맹세드리지만 왕께서 나가지 않으시면 오늘 밤에 왕의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왕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당해 온 모든 어려움보다 더욱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실 것입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큰 슬픔을 안고 있었으나, 요압의 직언이 옳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는 슬픔을 안으로 삭이며 왕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모여 있는 성문에 나가 모습을 보였고, 이에 모든 사람들이 왕을 보러 나와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이에 압살롬을 따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치며 압살롬의 반역으로 일어난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이제 다윗은 수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압살롬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다윗을 헌신짝처럼 버린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왕을 모셔와야 한다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왕은 우리를 블레셋 사람과 우리의 다른 원수들로부터 구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 왕은 압살롬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 있다. 우리가 왕으로 세운 압살롬은 이제 싸움터에서 죽고 말았다. 우리는 다시 다윗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다윗을 왕으로 다시 모시려고 했습니다만, 사실 현실적인 이익에 편승하기 위해 압살롬 편에서 다윗 쪽으로 재빠르게 휙 돌아선 것입니다. 다윗의 친족인 유다 지파 사람 중에도 많은 사람들도 압살롬에게 돌아섰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머뭇거리고 있는 유다 지파 사람들의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그대들은 나의 형제요, 나의 집안 사람들이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왕을 다시 모시는 일에 아무 말이 없소?” 이처럼 다윗은 유다 지파를 향해 “나의 형제, 나의 집안 사람들”하고 부르며,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모셔 가는 일을 담당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가 만회할 잘못을 주는 동시에, 자신이 유다 지파를 용서했음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유다 지파와 화해함으로서 다시 이스라엘의 재통치 기초 기반을 닦았습니다.
압살롬은 죽었으나, 그의 군대를 지휘하고 다스리던 아마사 장군은 살아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아마사는 반역죄로 죽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아마사를 따르던 백성들로 인해 2차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다윗은 아마사에게 전령을 보내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마사, 그대는 내 집안 사람 중 한 사람이오. 내가 그대를 군대의 사령관으로 삼겠소. 만약 내가 요압 대신 그대를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주셔도 좋소.’” 다윗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달라고 부탁한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고 압살롬을 죽인 요압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총사령관으로 있던 요압의 직위를 해제하고, 대신 압사롬의 군대를 지휘하던 아마사를 총사령관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나타냈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반역 세력까지 품었습니다. 다윗의 요청대로 유다 사람들은 왕을 맞이하러 왔고 왕의 무리가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을 섬겼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의 도움으로 새출발을 하려 했고, 요압을 대신하여 아마사를 총사령관으로 세움으로써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기반을 잡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아버지로서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에 슬픔에 계속 빠져 있었다면, 다윗은 더 큰 환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비록 바늘처럼 뾰족한 직언이었으나 요압의 말이 옳은 조언이었기에 다윗은 아버지로서의 슬픔을 잠시 안으로 삭히며 왕으로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그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했습니다. 이 때 다윗이 택한 방법은 빠르게 예루살렘에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더라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다윗은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빠른 예루살렘 귀환보다, 백성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