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적장 압살롬을 죽임으로 전투는 끝이 났습니다. 이에 요압은 다윗에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때 사독 제사장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자진하여 전쟁의 승리를 보고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요압 장군님, 제가 다윗 임금님에게로 달려가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원수에게서 구원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요압은 다윗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려 반역을 일으켰으나, 아버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기뻐할 리 만무합니다. 게다가 전투 전 모든 병사들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너그러이 대해줄 것을 명령한 다윗이니, 압살롬이 전쟁 중 죽었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리게 되면 그는 분명 큰 슬픔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요압은 승전보를 알리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에게 다윗 왕에게 슬픔이 될 이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다른 좋은 소식으로 다윗을 찾아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네가 전하여서는 안 된다. 너는 다른 날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도 된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임금님의 아들이 죽은 날이다.” 물론 반란군을 진압한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왕의 아들 압살롬이 죽은 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요압은 자신이 압살롬을 죽인 것이 다윗을 슬프게 만들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요압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요청을 거절하고 대신 이방인 곧 구스 사람에게 명하여 다윗에게 전쟁의 상황을 보고하라고 파견하였습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입니다. 이 사람은 외국인 용병인 셈이죠. 이전에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아말렉 청년을 죽였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들도 사형에 처했습니다. 요압이 전쟁의 승전보를 알리는 이 일에 이방인 구스 사람을 파견한 것은 그가 다윗에게 나쁜 소식을 전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압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다시 한번 자신이 전쟁의 승전보를 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이 일로 다윗에게 칭찬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사독과 가까이 지내던 군대장관 요압은 아히마아스가 다윗에게 미움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가 거듭 간청하자, 결국 요압은 “달려가라”하고 그를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한편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던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성문 위에 있던 파수꾼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다윗에게 보고했습니다. 다윗은 한 사람이 오는 것이면 분명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패한 것이면 한 사람이 아니라 적군을 피해 도주하는 여러 무리들이 왔을 것이기 때문이죠. 파수꾼은 달려오는 이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임을 알아보고 다윗에게 보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다윗의 마음이 한 결 더 편안해졌습니다. 아히마아스는 늘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압이 충성스런 아히마아스를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선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8절을 보니 아히마아스가 다윗 왕을 보자 마자 제일 처음 한 말이 바로 “샬롬!” “평강하옵소서!”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All is well 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아히마아스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다윗 왕을 대적하여 손을 드는 원수들을 여호와께서 넘겨주셨다고 말하며 승전보를 전했습니다. 29절에 다윗이 아히마아스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이 무엇입니까? “압살롬은 어찌 되었는가”입니다. 29절과 32절을 각각 보면 전쟁의 승리를 보고하러 온 두 사람의 전령에게 다윗은 자신을 위해 싸웠던 지휘관들이나 병사들의 안위에 대해서 묻지 않고, 반란자 압살롬의 안위에 대해서 가장 먼저 물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다윗의 마음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향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할 것을 알고 있었음으로 자신은 압살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고 둘러댔습니다.
이후 31절에 요압이 보낸 구스 사람이 다윗에게 도착했습니다. 그 역시 다윗에게 전쟁의 승전보를 알렸습니다. 다윗이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압살롬은 어찌 되었는가?” 이 때 다윗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 용병 구스 사람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높으신 임금님의 원수들을 비롯하여, 임금님께 반역한 자들이 모조리 그 젊은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33절에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심히 아프다는 것은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다윗의 몸이 심히 떨었다. 그의 몸이 심하게 진동하였다’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3절을 보면 다윗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속 반복해서 압살롬의 이름을 불러가며 슬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명령을 거스르고 압살롬을 죽인 요압의 불순종이 그의 주인 다윗을 큰 슬픔에 빠지게 만든 것이죠.
오늘 본문은 나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이 동시에 다른 이에게 아픔이 되는 소식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나에게는 좋은 소식인데, 상대방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아픈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대화할 때 나 중심이 아니라 항상 상대방 중심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나에게만 좋은 소식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소식입니다. 참 복음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듣는 이들에게 기쁨을 전해줍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된 소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좋은 소식을 다윗에게 들려주려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구스 사람보다 앞서 갈 정도로 열심히 달려가서 다윗에게 승전보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열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까? 들판을 가르고, 강을 건너서라도 전해주어야 할 생명의 이름 ‘예수’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이 이름을 담대하고 열심으로 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복음의 전령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