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8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유치원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아빠가 더 힘이 세!” “아냐 우리 아빠가 더 세!” 두 아이는 서로 자기 아빠가 더 세다고 싸우다가 그만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맞은 아이는 금새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조그마한 아이의 한쪽 코에서 빨간 피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싸우는 수준이 어른들이 보면 참 유치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니는 교육 시설도 이름을 ‘유치원’이라고 지었나 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사실은 유치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유치한 싸움이 교회 안에서도 벌어진다는 것 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들을 보십시오. “당신 누구 편이냐?” 입니다. “목사님 편이냐?” 아니면 “장로님 편이냐?”하고 싸웁니다. 예수님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으며 혀를 찹니다. “쯧쯧, 평상시 사랑의 하나님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서로 편을 갈라 싸우다니 하나님이 다 웃으시겠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도 교회 성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며 조롱 합니다.
성도들끼리 주먹다짐하고, 욕하고, 심지어 법정 고소까지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고린도교회에 바로 이와 같은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서로 편을 갈라 섰고, 교회는 사분오열로 찢어졌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상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교회가 어찌 이리 분쟁하고 서로 다투고 싸운단 말인가?’ 바울이 볼 때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은 마치 유치원 어린아이들 싸움 같이 어리숙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며 지금 자신이 마치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것처럼 그들을 대한다고 글을 썼습니다. 1-2절 입니다.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린도교회에 있는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말하지 않고,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고, 젖을 먹였습니다.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단단한 식물이란 신앙생활의 깊은 진리들 입니다. 이에 비해 ‘젖’은 복음의 초보적인 교리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보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단단한 말씀과 같은 심오한 말씀의 비밀을 가르쳐 줄 단계가 아닌 거에요. 이들은 여전히 영적 어린이들 입니다. 복음의 가장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상태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 이상 사역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가 고린도교회를 떠난 지 적어도 5년 뒤에 쓴 편지 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적어도 7-8년 정도는 신앙생활 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어린 아이들을 대함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신앙의 연수가 찬다고 해서, 영적 성장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교회 오래 다닌다고 해서 다 영적 청년이 되고, 영적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 30년 해도 여전히 영적 어린이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내 아들, 내 딸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몸은 자라는데 정신은 계속해서 6살짜리 어린이로 머물러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내 아들이나 딸이 정신상태는 자라지 않아도 그래도 키는 크고 몸집은 크니까 기뻐할까요? 아니요. 이 보다 더 슬픈 성장이 또 어디 있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를 10년, 20년 넘게 다녔는데도, 아직도 영적 어린이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근심거리 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입니다. 영적 어린이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고 사도 바울이 가슴 아파한 것과 같이 하나님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 어린이로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 보시며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 안에 말씀을 향한 믿음, 천국을 향한 소망,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날마다 자라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성장이 가능합니까?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섬김과 봉사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 했습니다. 3절 입니다.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영에 속한 사람들 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당신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영에 속한 사람이건만, 어찌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합니까?”하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이 되어 여전히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모순된 이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나눠졌나 한 번 봅시다. 4-5절 입니다.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파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아직 육에 속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지 일꾼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을 했을 뿐 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나 아볼로를 추종하는 잘못을 가리키며, 그와 같이 당파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라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자기의 추종자가 더 탁월하다고 싸우고 다투는 교회를 향해,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6-7절 입니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개척 했습니다. 그 이후 아볼로가 와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나 아볼로나 주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직무대로 일한 사역자일 뿐 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의 직무의 분업을 심는 일과 물 주는 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열매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 합니다. 8절 입니다.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비록 바울과 아볼로도 모두 열심히 일했습니다만, 일꾼이 영광을 받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열매 맺도록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주목하고 따르며 경배해야 할 대상은 심거나 물을 준 사역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자라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과 같은 복음의 일꾼들과 성도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합니다. 9절 봅시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은 여기서 자신과 아볼로나 베드로나 모두다 같이 주인의 집과 논밭에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는 사실을 강조 합니다. 한국식 표현으로 빌려 말하면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 모두 주인 대감 집에서 함께 일하는 머슴들 입니다. 그러니 이 집 식구들은 누구를 섬겨야 하겠습니까? 머슴들 입니까? 아니면 집 주인입니까? 당연히 집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실망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래 사람이란 사랑해줘야 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변함 없으시고 영원한 반석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그 안에서 크신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적 어린이 입니까? 아님 영적 청년입니까? 아님 영적 부모 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더욱 자라가십시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십시오.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숙함을 가지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시며, “또 이만큼 자랐구나?”하고 기뻐하시며 미소 지으실 수 있도록 날마다 주님 안에서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