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기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장소보다 엄마 품이 가장 따뜻하고 평안합니다. 엄마 품 속에 안긴 아기는 가장 행복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 거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 품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품보다도 안전하고 평안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곧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신 것일까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곧 우리의 삶에 충만한 기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 입니다. 11절 말씀을 봅시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 기쁨이 충만한 비결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한 번 둘러 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성경 읽는 것이 따분하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자체를 매우 고리타분한 장소로 생각하며 교회 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하는 기쁨과 세상이 주는 기쁨은 서로 다르기 때문 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자기의 욕심을 채움으로 인해 얻는 순간적인 쾌락과 흥분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기쁨은 영적이고 지속적인 기쁨으로 하나님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는 기쁨 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이러한 영적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정을 생각하면,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고 죽으시던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병자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던 예수님의 표정은 분명 기쁨과 평강이 가득한 표정이었을 것입니다. 희락도 성령의 열매 중 하나 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구원 받고 성령을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된 영적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기록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글을 쓰고 있던 바울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감옥 입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고 쥐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먹을 것이라고는 물과 딱딱하게 말라버린 빵이 전부 입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감옥에서도 바울은 주님 안에 거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가 말한 가쁨이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한 ‘영적 기쁨’ 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정리해 보면, 예수님은 주님의 사랑 안에게 거하는 방법이 바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명’이란 ‘율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율법 준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계명’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특별하게 염두 해 두고 계신 ‘내용’이 있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바로 이 ‘서로 사랑하라’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계명의 내용 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일까요? 먼저 세상의 사랑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의 사랑은 자신에게 유익이나 이익이 되는 것을 사랑합니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 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부인하는 제자,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는 제자, 자신을 배반하는 제자까지 끝까지 발을 씻어 주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그 어떠한 이익이 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미워해도 감싸주고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본을 좇아 살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를 ‘친구’ 삼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요? 어떻게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위대한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들을 향하여 감히 ‘친구’라고 불러 주셨을까요? 오늘 본문의 결론이 17절 말씀 입니다.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기도하고 성경보고 교회와서 예배 드리고 헌금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우리는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만날 것입니다. 나를 부정적으로 자극하는 사람,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랑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 주시는 충만한 기쁨이 가득 넘치는 복된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