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원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직접 이 두 눈으로 보는 것 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일, 성난 폭풍우가 예수님의 한 마디 말씀 앞에 잠잠해 지는 일,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 일,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일, 병든 자가 고침 받고,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는 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중 서너 개… 아니 한두 개만 제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만 있다면 저의 믿음이 지금보다도 더 월등히 좋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그토록 소원하던 바를 이룬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직접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살아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들이 본 이적은 한 두개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간 유대인들 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주님이 가지신 신적 능력을 자랑하시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기적’(miracle)이란 단어 대신에 ‘표적’(sign)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은 바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해서 불치병에 걸린 병자 한 사람만 낫게 해도 엄청난 사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가는 곳곳마다 병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치시지 못한 질병이 없고, 회복시키지 못한 환자가 없습니다. 수많은 귀신들이 그 앞에서 쫓겨나갔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없이 많은 다른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일상적으로 행하시는 분인데, 유대인들은 그런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면서도 저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37절).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구약성경 이사야 53장 1절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37-3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요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여기서 ‘우리에게 들은 바’는 예수님의 말씀 입니다. ‘주의 팔’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 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더 나아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불신의 이유에 대해서 이사야 6장 10절을 인용하였습니다. 39-4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요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지적하며, 저들이 믿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귀와 눈을 무디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마음과 귀와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사실 유대인 가운데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면 그가 행하는 이 모든 초자연적인 표적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약속된 구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겉으로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 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나사렛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유대교에서 출교 시킬 것이라 협박했기 때문 입니다. 이 당시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시민권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고, 어떤 종교적인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게 됩니다. 종교적 제사에 참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대 공동체 속에서 사회생활도 어려워지고, 회당에서의 자녀교육도 불가능해 집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임은 분명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요한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43절 말씀을 봅시다. “(요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출교를 피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의 인정과 영광을 얻기 위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고 꼭꼭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기에 영혼이 망한 자들 입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주님을 버렸습니다. 지금 자신의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메시아를 믿고 따르는 것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버렸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 드렸듯이, 저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표적을 보고 싶어 합니다. 기적의 현장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믿음이 더 자랄 수 있다고 확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여전히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도 후에 하나님을 불신 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도 하나님을 배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도 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 불쌍한 사람들이 혹시 우리들은 아닐까요? 우리들의 지난 날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잠시 잊고 살았을 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같이,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고 깨닫게 하신 일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자신의 삶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살고 있다면 우리 역시 저 미련하고 어리석은 유대인들과도 같습니다. 저들은 사람은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무시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들도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세상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십시오. 진실한 믿음은 실제의 삶에서 나타나기 마련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담대하게 또한 당당하게 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