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7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장 1-11절)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자 이에 위기를 느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헸습니다. 그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끌고 와 예수님께 재판을 요청 하였습니다.
모세의 십계명 중 제 7 계명이 바로 ‘간음하지 말라’ 입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성한 결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간음을 범한 사람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명기 22장 22절에는 간음죄를 지은 사람은 즉시 돌로 쳐 죽이는 형벌에 처하도록 규정 하였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옴으로써 묘한 긴장감을 일으켰습니다. 여태까지 사랑의 정신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과연 이처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도 용서할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시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정신에 다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정교한 함정을 준비한 것이죠.
그럼에도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예수님을 향해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습니다. “ (요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기들의 의중을 감춘 채 예수님을 높이어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당시 선생이라 불리는 자들은 반드시 질문에 대답해 주어야 했으며, 질문을 회피하는 것은 큰 수치로 간주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활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을 회피하는 방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선생이여’하고 불렀던 것 입니다.
이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 왔다는 말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자로 변명할 여지가 전혀 없이 이 여인의 죄가 명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이 여인은 즉결 심판에 따라 곧 돌에 쳐 죽임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곧 자신에게 임하게 될 사형선고를 앞두고 부르르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주장과 같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 여인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답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앞서 언급 했듯이 이들은 예수님의 지혜나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들은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음흉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절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요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님의 등장은 유대지도자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당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를 질책하고 정죄하신 예수님, 안식일 규례를 어기고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권능으로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사회적 입지마저 흔들리자 이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 파멸시켜 버리려고 계책을 꾸민 것이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사 직접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우리는 이 날 예수님께서 땅 바닥에 어떤 내용의 글을 쓰셨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십계명을 썼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수님의 손 끝에서 그려지는 글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께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하고 물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고소하고 죽이려 하는 사악한 음모, 그리고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한 여인이 죽을 수 있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시며 조용히 글씨를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신 예수님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입을 여셨습니다. “(요 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몸을 굽히시사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이어 기록 하셨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을 데리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을 훌륭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에 이들은 이제 할 말을 잃어버린 채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뇨? 만일 누구라도 이 여인을 돌로 친다면 자신은 죄가 없는 완전한 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리 생각하고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진다면 그 사람 역시 이 여인과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셈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자세로 애써 죄를 가리려 하면서도,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판하고 일방적으로 정죄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증스러운 면모를 그대로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이 여인을 정죄하며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돌을 들고 여인을 향해 던질 타이밍만 바라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하나 둘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분해하며 떠났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여인을 보고 물으셨습니다. “ (요 8:10)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자가 말합니다. “주여 없나이다”
이후에 이 여인은 평생 잊지 못할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11절 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여인도 스스로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죽을 생각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소망을 선물 받았습니다. 분명 이 여인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맞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여전히 이 여인에게 죄를 용서 받고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분명 사망 입니다. 율법만 보면 이 여인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에 대한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이 여인과 같은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 구원받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평생 율법을 연구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의 기본 정신인 자비와 은혜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며 미워하는 일에 사용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녀에게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혹시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말씀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처럼 아직도 하나님 보실 때 악한 죄를 끊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남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