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사방에서 붑니다. 불어오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법입니다. 바람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임의로 불기 때문 입니다. 바람의 방향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밤낮에 따라 다릅니다. 말 그대로 임의로 부는 바람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이러한 바람의 특성으로 비유하셨습니다. 8절 입니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사람이 바람을 조종하지 못하는 것처럼, 또한 바람의 기원을 알지도 못하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그 분의 임의대로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또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즉 내가 구원 받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막 예수님을 믿은 분들의 경우, 내가 구원 받은 것, 내가 예수 믿는 것이, 나의 의지적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내 의지적인 선택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강권적인 선택, 즉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사람 즉 구원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지적 선택이나, 능력대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되어진 것임을 늘 잊지말고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9절에 니고데모가 말합니다. “아니,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영으로 거듭납니까?” 그러자 10절에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책망 하십니다. “(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율법에 대한 지식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성령으로 거듭나는 영적 체험은 전혀 없었던 것이죠.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런 니고데모와 같은 유형의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 지식은 있으나, 삶에서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 안타깝게도 니고데모는 진리를 가르치는 자였으나 진리를 모르는 자였습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하고 계신 ‘우리’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과 그의 제자 공동체 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이 증거하는 것은 실제로 경험한 복음이란 것을 강조하십니다. 반대로 ‘너희’는 니고데모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분명 성도가 거듭나는 것은 이 땅 가운데 일어나는 일 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 땅에서 일어사는 거듭남의 사건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하늘의 일을 말하면 그것은 또 어떻게 믿겠냐고 책망하십니다. 12절 입니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여기서 하늘의 일이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니고데모야, 내가 너에게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해도 너가 믿지 않는데, 네 죄를 위하여 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한들 너가 어떻게 믿겠느냐?”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율법을 연구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거듭 책망 하셨습니다.
13절 입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가 성육신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이 사건을 우리가 승천 혹은 승귀 부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말고는 하늘에 다시 올라갈 자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이후 권능으로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시고 또 다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자신의 참 정체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14-15절 입니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은 불뱀을 진중에 보내셨습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은 극한 고통을 호소하며 죽어 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놋뱀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린 자 가운데 누구든지 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이들의 죄를 씻기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장대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장대에 달린 놋뱀과 같은 역할을 함을 친히 보여주신 것이죠. 예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십자가 죽음을 짊어지심은 15절 말씀과 같이 저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종, 신분, 성별에 차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생을 소유한다는 것은 죄가 사하여진다는 것이요, 죄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 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 영원토록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